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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원 출신 '잡초'에서 'AG 우승 명장'으로 뜬 '학범슨' 김학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0일 오후(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와바랏주 반둥의 시 잘락 하루팟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축구 조별리그 E조 3차전 한국과 키르기스스탄의 경기. 김학범 감독이 박수를 치고 있다. [연합뉴스]

20일 오후(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와바랏주 반둥의 시 잘락 하루팟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축구 조별리그 E조 3차전 한국과 키르기스스탄의 경기. 김학범 감독이 박수를 치고 있다. [연합뉴스]

"감독 입장에서 자신없다면 도전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1등 아니면 의미 없다"

지난 3월 5일 아시안게임에 나설 23세 이하(U-23) 축구대표팀을 맡은 김학범(58) 감독의 취임 일성이었다. "아시안게임을 통해 평가를 받고 싶었다. 감독이 자신감이 없으면 선수들도 자신감을 갖지 못한다. 감독이 먼저 가고 선수들도 함께 가야한다"던 김 감독은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표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1일 인도네시아 자와바랏주 보고르 치비농의 파칸사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축구 결승에 오른 한국은 일본을 2-1로 눌렀다. 승리를 확정한 뒤 코칭스태프들과 기쁨을 나눈 김 감독은 두 팔을 번쩍 들어올리며 환호했다. 6개월 가까이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표로 달려온 김학범호가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순간이었다.

1일 오후(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와바랏주 보고르 치비농의 파칸사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결승전 한국과 일본의 경기. 김학범 감독이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1일 오후(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와바랏주 보고르 치비농의 파칸사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결승전 한국과 일본의 경기. 김학범 감독이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김 감독이 아시안게임 감독을 맡고 이끌어간 과정은 파란만장하다. 그는 한국 축구계의 대표적인 '잡초'로 꼽힌다. 선수 시절 김 감독은 프로 무대도 밟지 못한 무명이었다. 1991년 실업팀 국민은행에서 은퇴한 뒤 한때 은행원으로도 일했다. 그러나 축구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그는 이듬해 지도자로 변신해 선수로서 이루지 못한 꿈을 하나씩 펼치기 시작했다.

2001년부터 세 시즌 연속 성남의 K리그 우승을 코치로서 이끈 김 감독은 2005년엔 감독으로서 K리그 우승을 거뒀다. 카리스마에 지략가 캐릭터를 더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잉글랜드)를 이끈 알렉스 퍼거슨 감독에 빗대 '학범슨(김학범+퍼거슨)'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이어 강원FC, 성남FC 등을 맡았던 그는 K리그의 대표적인 명장 중 한 명으로 꼽혀왔다.

23세 이하(U-23)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AG) 남자축구대표팀 김학범 감독이 9일 파주 축구대표팀트레이닝센터(NFC) 훈련장에서 선수들 훈련을 지시하고 있다. 양광삼 기자

23세 이하(U-23)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AG) 남자축구대표팀 김학범 감독이 9일 파주 축구대표팀트레이닝센터(NFC) 훈련장에서 선수들 훈련을 지시하고 있다. 양광삼 기자

그러나 김 감독은 늘 편견과 맞서싸워야 했다. 대표팀 경험도 없고 주류와는 멀었던 경력 탓에 대표팀 코칭스태프와도 별다른 인연을 맺은 적이 없었다. 올해 초 김봉길 감독의 후임으로 아시안게임 대표팀을 맡게 된 그는 나이(1960년생) 때문에 젊은 선수들과 세대차 우려도 있었다. 특히 아시안게임 직전엔 성남 시절 제자였던 황의조(26)를 발탁하자 '인맥 축구' 논란에 휩싸였다.

지난 13일 훈련 도중 활짝 웃는 김학범(왼쪽) 감독과 손흥민. [연합뉴스]

지난 13일 훈련 도중 활짝 웃는 김학범(왼쪽) 감독과 손흥민. [연합뉴스]

김 감독은 때로는 유연하면서도, 과감하게 위기를 정면 돌파했다. 말레시이아와 조별리그에서 1-2로 패한 뒤엔 "흙길, 시멘트길을 놔두고 가시밭길을 가게 됐다. 우리가 만든 상황이기 때문에 이겨나가야 한다. 선수들과 분명히 이겨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꾸준하게 중용한 황의조는 토너먼트 4경기에서 5골을 넣는 등 9골로 결승 진출을 이끌었다. 팬들 사이에선 '인맥 대신 금맥'이라는 말도 나왔다.

평소 강인하고 무뚝뚝한 김 감독은 8강 우즈베키스탄과 연장 접전 끝에 4-3으로 힘겹게 승리했을 땐 "선수들이 열심히 잘 해준 것 같다"면서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마음 고생도 하면서 꿋꿋하게 가시밭길을 헤쳐나간 김학범 감독은 아시안게임에서 끝내 활짝 웃는 지도자가 될 수 있었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축구 대한민국과 우즈베키스탄의 8강전이 27일 보고르 패트리어트 스타디움에서 열렸다. 경기가 끝난 후 김학범 감독이 경기장을 나서고 있다. 김성룡 기자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축구 대한민국과 우즈베키스탄의 8강전이 27일 보고르 패트리어트 스타디움에서 열렸다. 경기가 끝난 후 김학범 감독이 경기장을 나서고 있다. 김성룡 기자

치비농=김지한 기자 kim.ji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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