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입장에서 자신없다면 도전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1등 아니면 의미 없다"
지난 3월 5일 아시안게임에 나설 23세 이하(U-23) 축구대표팀을 맡은 김학범(58) 감독의 취임 일성이었다. "아시안게임을 통해 평가를 받고 싶었다. 감독이 자신감이 없으면 선수들도 자신감을 갖지 못한다. 감독이 먼저 가고 선수들도 함께 가야한다"던 김 감독은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표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1일 인도네시아 자와바랏주 보고르 치비농의 파칸사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축구 결승에 오른 한국은 일본을 2-1로 눌렀다. 승리를 확정한 뒤 코칭스태프들과 기쁨을 나눈 김 감독은 두 팔을 번쩍 들어올리며 환호했다. 6개월 가까이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표로 달려온 김학범호가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순간이었다.
김 감독이 아시안게임 감독을 맡고 이끌어간 과정은 파란만장하다. 그는 한국 축구계의 대표적인 '잡초'로 꼽힌다. 선수 시절 김 감독은 프로 무대도 밟지 못한 무명이었다. 1991년 실업팀 국민은행에서 은퇴한 뒤 한때 은행원으로도 일했다. 그러나 축구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그는 이듬해 지도자로 변신해 선수로서 이루지 못한 꿈을 하나씩 펼치기 시작했다.
2001년부터 세 시즌 연속 성남의 K리그 우승을 코치로서 이끈 김 감독은 2005년엔 감독으로서 K리그 우승을 거뒀다. 카리스마에 지략가 캐릭터를 더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잉글랜드)를 이끈 알렉스 퍼거슨 감독에 빗대 '학범슨(김학범+퍼거슨)'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이어 강원FC, 성남FC 등을 맡았던 그는 K리그의 대표적인 명장 중 한 명으로 꼽혀왔다.
그러나 김 감독은 늘 편견과 맞서싸워야 했다. 대표팀 경험도 없고 주류와는 멀었던 경력 탓에 대표팀 코칭스태프와도 별다른 인연을 맺은 적이 없었다. 올해 초 김봉길 감독의 후임으로 아시안게임 대표팀을 맡게 된 그는 나이(1960년생) 때문에 젊은 선수들과 세대차 우려도 있었다. 특히 아시안게임 직전엔 성남 시절 제자였던 황의조(26)를 발탁하자 '인맥 축구' 논란에 휩싸였다.
김 감독은 때로는 유연하면서도, 과감하게 위기를 정면 돌파했다. 말레시이아와 조별리그에서 1-2로 패한 뒤엔 "흙길, 시멘트길을 놔두고 가시밭길을 가게 됐다. 우리가 만든 상황이기 때문에 이겨나가야 한다. 선수들과 분명히 이겨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꾸준하게 중용한 황의조는 토너먼트 4경기에서 5골을 넣는 등 9골로 결승 진출을 이끌었다. 팬들 사이에선 '인맥 대신 금맥'이라는 말도 나왔다.
평소 강인하고 무뚝뚝한 김 감독은 8강 우즈베키스탄과 연장 접전 끝에 4-3으로 힘겹게 승리했을 땐 "선수들이 열심히 잘 해준 것 같다"면서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마음 고생도 하면서 꿋꿋하게 가시밭길을 헤쳐나간 김학범 감독은 아시안게임에서 끝내 활짝 웃는 지도자가 될 수 있었다.
치비농=김지한 기자 kim.jiha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