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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개월 전 정병국 예언 … “가계소득 통계 나오면 정부 작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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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9호 16면

통계청 논란 팩트체크

“소득주도 성장을 하는데 이것 하면 작살난다. 정부가.”

가계동향조사 논란 #폐지키로 한 통계 여당서 재개 요구 #정병국 “소득주도 성장 허구 드러난다” #통계청장 전격 교체 #지난해 4분기 결과엔 반색하던 여권 #불평등 악화 올 1·2분기 결과엔 불만 #장하성 실장과 ‘구원’ #교수 때 ‘소득불평등 심화’ 인용 통계 #통계청 “부적절하게 비교했다” 반박

지난해 11월 9일 국회 기획재정소위에서 정병국 바른미래당 의원이 한 말이다. ‘이것’은 분기별로 나오는 통계청의 소득 부문 가계동향조사다. 김정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소득주도 성장 정책의 효과 파악” 등을 이유로 가계동향조사를 위해 36억7000만원을 증액하자고 요구한 데 대한 비판이었다. 애초 통계청은 관련 예산을 요구하지 않았다. 지난해 말로 이 조사를 폐지하려 했기 때문이다. 대신 1년마다 나오는 국세청 자료를 반영한 가계금융·복지조사를 활용하려고 했다. 김 의원의 증액 요구는 이를 번복하란 얘기였다.

정병국 의원의 주장이 이어졌다. “통계가 나오면 결과론적으로 소득주도 성장이 허구란 게 딱 드러난다. 김 의원이 어떤 의도로 하려는지 아는데 역작용만 일어난다. 국세청 자료로 1년 뒤 분석하면 되지 왜 미리 이걸 해서 어디에다 써먹으려고, 괜히 자꾸 분란만 일으킨다. 결과 나오면 그것 가지고 맨날 상임위에서 떠들 것 아니냐. 그것을 무엇하려 하느냐.”

그날 이후 소득 부문 조사 결과가 세 차례 나왔다. 문재인 정부에 유리했던 지난해 4분기 결과를 두곤 정부·여당이 반색했다. 하지만 불리했던 올 1·2분기 결과 발표 이후엔 여권을 중심으로 “통계에 문제 있다”는 불만이 제기됐고, 급기야 지난달 말 통계청장이 교체됐다. 그러자 야당에선 “소득주도 성장이 아닌 통계주도 성장을 만들려는 것이냐”며 반발했다. 상임위마다 논쟁이 벌어졌다. 통계청은 통계청대로 가계동향조사를 전면 개편한다며 올해 예산의 다섯 배가 넘는 규모인 159억여원을 내년 예산으로 편성했다. 공교롭게 지금까지 정병국 의원이 ‘예언’한 대로다.

소득 부문 가계동향조사가 어떤 것이기에 이 같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지 짚어 봤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① “신뢰성 없는 조사”

가계동향조사와 가계금융·복지조사 모두 소득분배 관련 조사다. 1963년부터 시작된 가계동향조사는 가계소득과 지출을 함께 포괄하는 조사로, 매달 가구를 찾아가 “매일 지출을 기록해 달라”(가계부 기장)는 방식으로 했다. 점차 시간이 흐를수록 무응답 가구가 늘었다. 특히 이로 인해 소득 조사가 논란이 됐다. 고소득층과 저소득층이 덜 반영돼서다.

2011년부터 나오는 가계금융·복지조사는 통계청이 한국은행·금융감독원과 함께하며 국세청의 납세자료를 활용해 전국 2만 가구의 연간 자산 및 부채현황까지 확인한다. 가계동향조사보다 소득 파악이 더 정확하다는 평가다.

두 조사의 결과가 같을 순 없었다. 소득분배의 불평등도를 나타내는 수치인 지니계수가 대표적이다. 가계동향조사를 기반으로 한 지니계수론 소득불평등에 문제없는 것으로 나오는 데 비해 가계금융·복지조사로 파악한 ‘신’지니계수는 불평등한 국가로 나오곤 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당시 야권(현 여권)은 가계동향조사의 신뢰성 문제를 제기하곤 했다. 2016년 국가통계위에서 지출 조사 중심으로 재편하기로 결정한 배경이다.

유경준 통계청장 재임 중이던 지난해 통계청은 가계동향조사를 손봤다. 고소득층의 응답률을 높이기 위해 면접으로 조사방식을 바꾸고, 2015년 인구통계에서 나타난 인구변화를 반영해 표본을 재설계했다. 이 과정에서 표본을 8500가구에서 5500가구로 줄였다. 지출 부문은 연간으로, 소득 부문은 분기별로 작성하기로 했다.

결국 지난해 말 김정우 의원의 증액 요구가 받아들여지면서 소득 부문 조사가 살아났다. 샘플도 5500가구에서 8000가구로 늘어났다.

② 여권의 통계 홍보

당초 통계청은 올 조사분부터 발표하려고 했다. 그러나 올 2월 지난해 4분기 결과를 공개하게 됐다. 유 전 통계청장의 배경 설명이다.

“표본의 전면 개편으로 2016년과 2017년은 비교가 불가능했다. 그러나 지난해 추석이 10월에 있어 일시적으로 4분기 소득분배 지표가 좋은 것으로 나오자 청와대와 기획재정부가 약속을 깨고 언론에 공개해 버렸다. 통계청은 울며 겨자 먹기로 공식 보도자료가 아니라 수치로만 제공하게 됐다. 이때부터 상황이 엉켰다.”

실제 이 무렵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기자들에게 “4분기 실질소득이 9분기 만에 증가세로 전환된 점을 가장 기분 좋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후에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통계”라고 언급한 일도 있다. 여당도 “소득주도 성장 정책의 효과”라고 반색했다.

③ 불리한 조사 나오자 여권 반발

하지만 석 달 만에 상황이 역전됐다. 5월 하순 올 1분기 조사 결과 발표부터다. 소득 하위 20%(1분위)의 소득이 지난해보다 급감했다는 내용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곧바로 “소득주도 성장과 최저임금 인상의 긍정적인 부분을 자신 있게 설명해야 한다. 긍정적 효과가 90%”라고 말해 논란을 키우기도 했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자영업자를 제외한 임금근로자만을 대상으로 만든 새로운 통계 보고서가 ‘90%’의 근거였다.

강신욱 신임 통계청장도 이때 등장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던 그는 새로운 조사 방식을 제안한 보고서를 청와대에 제출했다. 처분소득을 산정할 때 퇴직금이나 자녀로부터 받는 용돈 등 비경상소득을 제외하는 방식인데, 강 청장의 방식대로 하면 올 1분기 1분위의 소득 감소율은 12.8%에서 2.3%로 줄어든다. 정부로선 “어려운 사람이 더 힘들게 됐다”는 비판은 덜 받게 된다는 의미다.

민주당이 통계청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증액을 요구한 당사자인 김정우 의원은 7월 기재위에서 ▶샘플이 5500가구에서 8000가구로 늘었고 ▶분위 샘플 수도 70%가 교체됐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황수경 당시 통계청장에게 “2017년과 2018년 통계치를 직접 비교하는 건 안 된다는 걸 알렸어야 했다”고 질타했다.

지난달 23일 2분기 조사마저 소득분배가 악화한 것으로 나오자 더 시끄러워졌다.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달 30일 “표본 숫자와 표본 구성이 작년과 완전히 달라진 것”이라며 “올해 가계소득을 작년과 단순비교하기가 어렵다는 것은 상식적인 판단이지만 통계청은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같은 여권의 비난에 대해 박상영 통계청 복지통계과장은 한 토론회에서 “(표본의) 중복률보다 우선 고려되는 것은 조사 대상이 현재의 모집단(전체 국민)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라며 “예를 들어 대통령 지지율 조사의 경우 조사 대상 중복률이 거의 0에 가깝지만 이를 지적하는 사람은 없다”고 반박했다.

④ 장하성과 통계청의 앙금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과 통계청이 ‘구원’도 있다. 정책실장으로 임명되기 나흘 전인 지난해 5월 17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한 언론이 인용보도한 게 계기였다. “1990년부터 2015년까지 가계평균소득 증가율은 90%로 가계총소득증가율(186%)의 절반에 불과했다. 이는 가계총소득에서 소득상위계층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고 있다”는 취지였다. 한마디로 소득불평등이 심해졌다는 주장이다.

통계청은 “부적절한 통계 사용”이란 취지의 해명자료를 냈다. 186% 부분은 한국은행 통계인 데 비해 90% 부분은 통계청의 가계동향조사에서 나온 걸 지적했다. 작성 범위나 개념 등이 다른 두 통계를 직접 비교해 부적절했다는 것이다. 1990년부터 26년간 평균 가구원수가 3.7명에서 2.5명으로 크게 줄었다는 사실도 언급했다. 달리 표현하면 평균소득을 구할 때 분모가 되는 가구수가 크게 늘었다는 의미다. 평균값이 내려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고정애 기자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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