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분수대] 팔순 페미니즘 미술 대모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599호 35면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선생님은 선생님의 어머니를 주제로 한 작품을 창작하며 모성을 통한 여성의 힘과 페미니즘을 역설해 오셨습니다. 그렇다면, 요즘 젊은 페미니스트들이 모성 자체를 거부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러는 게 당연합니다. 모성이라는 명목으로 여성들에게 덮어씌우는 굴레가 많으니까요. 그것에 대해 저항을 하는 것은 필요합니다.”

9월 4일 개인전을 앞두고 서울 학고재 갤러리에서 만난 팔순의 윤석남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맑고 힘 있는 목소리, 꾸밈없으면서도 멋스러운 옷차림, ‘꼰대스러움’을 찾기 힘든 언행,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채색 목조각 연작에 안주하지 않고 칠십 대에 새롭게 배워서 시작한 전통채색화 기법의 신작들…. 그를 보면서 ‘영원한 젊음’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그는 한국을 넘어서 동아시아 페미니즘 미술의 주요 작가로서 굴지의 미술관 테이트에 작품이 소장되는 등 세계적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런 그의 영감의 원천은 자신의 어머니였다. 선구적인 영화감독이었지만 가부장적이었던 아버지가 6남매를 두고 세상을 떠난 후, 어머니는 홀로 가정을 책임져야 했다. 그 당시 다른 많은 어머니들 같으면 아들을 위해 딸을 희생시키며, 언니와 윤 작가를 공장에 보내 남동생들의 학비를 벌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윤 작가의 어머니는 달랐다. 공장에서 일하는 어머니가 안쓰러워 윤 작가가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하자 어머니는 불같이 화를 냈고 결국 그를 대학에 보냈다.

게다가 윤 작가의 어머니는 눈물 속에 희생하는 타입이 아니었다. 남에게 베풀며 자신의 삶 또한 즐길 줄 아는 사람이었다. 공장에서 주는 간식을 먹지 않고 늦게 집에 돌아와 잠자는 자식들을 깨워 재미있는 게임을 하며 그 간식을 나눠 먹었다고 한다.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을 즐겨 읽기도 했다. 또한 “자신은 굶어도 거지가 지나가면 불러서 밥을 주는 사람”이었다. 그런 어머니에게서 윤 작가는 존경하는 한 인간을, 그리고 확장된 의미의 모성을 보았다.

“모성은 반드시 아기를 직접 낳아서 키우는 걸 말하는 게 아닙니다. 자기 자식만을 싸고도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모성은 타인을, 특히 약자를, 아우르고 포용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모성’이라는 이름으로 부당한 희생만을 강요하고 좁은 가정의 틀에 갇히게 하는 것에 대해서는 문제를 제기해야 하는 겁니다.”

윤 작가의 이야기를 들으며 어머니에게서 딸로 이어지는 감동적인 ‘대모’의 계보를 볼 수 있었다.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