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보험업계의 자동차보험료 인상 요구를 간신히 억누르고 있는 금융당국에게 뜻 밖의 강적이 나타났다. 바로 폭염이다.
올 여름 기록적 폭염의 불똥이 엉뚱하게 자동차보험료로 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폭염으로 차량 운행이 많아짐에 따라 손해율이 크게 상승하면서 손보사들의 보험료 인상 의지를 폭발시키는 방아쇠로 작용할 수 있어서다.
기상청에 따르면 올해 우리나라의 폭염일수(최고 기온이 33도 이상인 날)는 31.2일로 관측 사상 가장 많았다. 100년이 넘는 기상 관측 사상 딱 1회 있었던 ‘40도 이상’ 기록 횟수도 올해 여름을 거치면서 7회로 늘어났다. 전국 95곳 공식 관측소 중 61곳의 역대 최고기온이 새롭게 작성됐다.
폭염의 불똥이 자동차보험 손해율로 튀었다. 손해율은 보험금(소비자에게 지급되는 금액)을 보험료(소비자가 납부하는 금액)로 나눈 값이다. 손해율이 높을수록 보험사의 영업 실적은 악화한다. 삼성ㆍDBㆍ현대ㆍKBㆍ한화ㆍ메리츠 등 상위 6개 손해보험사에 따르면 지난 7월 이들 보험사의 자동차보험 손해율(잠정)은 평균 87.4%를 기록했다.
평년과 비교하면 이례적으로 높은 수치다. 이들 6개사의 지난해 7월 손해율은 78.9%로 올해 7월보다 8.5%포인트나 낮았다. 2016년 7월 손해율도 80.5% 수준에 머물렀다. 직전달인 올해 6월 손해율 역시 80.7%로 평년과 큰 차이가 없었다.
보험업계는 올해 7월부터 본격화한 무더위 행진이 손해율 상승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본다. 무더위가 계속 이어지면서 사람들이 출퇴근 시 대중교통보다는 자동차를 더 자주 찾게 되고 도로에 차량이 많아지면서 사고량도 늘 수밖에 없었을 것이란 분석이다.
최근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가 최고기온과 사고 발생 건수를 분석한 결과 기온이 1도 오를 때마다 교통사고 접수가 평균 1.2% 오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이유에서 본격적인 휴가철 기간이 있는 8월 손해율은 7월과 비슷하거나 그보다 더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8월의 폭염 정도 역시 7월보다 적지 않았던데다가 휴가철에는 자동차 운행량이 더 늘어나기 떄문이다.
문제는 폭염으로 야기된 높은 손해율이 자동차보험료 인상 여론에 힘을 실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간 업계는 정비수가 인상, 최저임금 인상, 2~3인 병실 건강보험료 적용 등 제도적인 보험금 인상 요인 탓에 보험료를 올려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여기에 손해율 지표가 합세하면서 ‘보험료 인상을 더는 미룰 수 없다’는 분위기가 강하게 형성되고 있다.
한 손해보험사 관계자는 “정비수가가 올라가면서 이를 보전하기 위한 보험료 인상분이 약 3%,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사망ㆍ부상 시 지급해야 하는 추가 보험금에 대한 보험료 인상분이 약 2~2.5%, 건강보험료 적용 병실이 늘어나면서 생기는 보험료 인상분이 1~2%인데 여기다 올해 여름 손해율까지 크게 올라갔다”며 “정상적이라면 자동차보험료를 7%는 올려야 하지만 금융당국의 입장 등을 고려해 한 발 양보한다 해도 최소한 3% 이상은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금융당국은 그 동안 업계와 시각을 달리해왔다. 보험금을 메우기 위해서 보험료를 올리기보단 보험금 누수액과 각종 비용 요인을 줄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긁히거나 찍힌 정도의 사고만으로는 부품을 교체하지 않고 복원ㆍ수리토록 한 ‘경미 손상 수리기준’의 대상을 현행 범퍼에서 문짝ㆍ펜더ㆍ트렁크 등으로 확대하는 방안이 대표적이다. 보험사가 고객들의 다이렉트 가입 등을 활성화해 사업비를 적극적으로 줄여나가는 것도 당국이 내놓은 대안 중 하나다.
조한선 금감원 보험감독국 팀장은 “일부 자동차 수리업체가 보험사 측에 수리비를 과잉ㆍ허위 청구하는 관행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이를 먼저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 금감원의 입장”이라며 “보험사들이 보험금 인상요인을 100% 전부 소비자에게 전가하기보단 자체적으로 조정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최대한 찾아보고 이를 고려해 보험료를 인상할 수 있도록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폭염 변수까지 추가되면서 자동차보험료 인상은 불가피해졌다는 게 업계의 대체적 시각이다. 기승도 보험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최근 경제 상황이 안 좋다 보니까 보험사들이 사회 보험 성격을 가진 자동차보험의 보험료를 쉽게 올리지 못했던 경향을 보인 건 사실”이라면서도 “보험사 경영 판단의 가장 중요한 근거인 손해율이 최근 크게 올랐다는 사실은 보험사들의 보험료 인상을 자극하는 판단근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용환 기자 jeong.yonghwan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