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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푸아뉴기니 금 160t 담보로 암호화폐” 코인 떴다방 기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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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파푸아뉴기니에서 금을 들여와 파주에서 제련을 합니다. 회장님은 홍콩에 금 160t을 갖고 있어요.”

“해외상장 땐 큰돈, 알짜회사 인수” #포털에 투자 유혹 대화방 수백 개 #개인계좌로 송금 요구 100% 사기 #“보이스피싱처럼 국가가 단속을”

23일 오전 여의도의 한 고급 사무실 건물 34층. S사 본부장 직함을 가진 A씨가 코인에 대한 투자 설명을 했다. 기자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알음알음 투자자를 모집하는 암호화폐 업체를 수소문해 설명회를 찾았다. 본부장 A씨는 “우리 코인은 이달 말 해외 암호화폐 거래소에 상장될 예정”이라고 소개했다.

SNS에서 ‘코인’으로 검색하면 암호화폐 투자자를 모집하는 대화방만 수백 개가 나온다. [SNS 화면 캡처]

SNS에서 ‘코인’으로 검색하면 암호화폐 투자자를 모집하는 대화방만 수백 개가 나온다. [SNS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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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코인은 금을 담보로 발행되고 종로 일대 금은방에서 금을 구입하는 데 사용하거나 중국 알리바바, 미국의 아마존과 같은 전자상거래 서비스에서도 이용할 수 있도록 준비 중이라는 게 이 업체의 설명이다. A씨는 “GS칼텍스에 독점으로 부탄올을 공급하는 모 화학업체도 곧 인수할 예정”이라고 주장했다.

금괴를 싣고 가다 침몰했다는 돈스코이호를 미끼로 한 암호화폐 사기 의혹에 대한 경찰 수사가 진행되는 가운데 비슷한 형태의 ‘떴다방’식 코인 투자 권유가 난립하고 있다.

실제로 네이버의 모임 서비스 밴드에는 적게는 200여 명에서 많게는 4000여 명이 회원으로 들어가 있는 코인 홍보 그룹이 수백 개나 개설돼 있다. 지인을 초대하면 코인을 더 얹어주겠다고 하거나 코인의 해외 거래소 상장 시기에 맞춰 ‘에어드롭’(이벤트성 코인 나눠주기)을 한다는 글이 많다.

문제는 이들 업체의 투자 방식이 불투명하고 실제 암호화폐 기술이 있는지 신뢰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대부분 전자지갑 형태가 아닌 개인계좌로 투자금을 받거나 블록체인 기반의 암호화폐 기술을 설명하는 백서도 공개하지 않는다. 돈스코이호를 인양하겠다면서 신일골드코인을 판매하고, 한편으론 코스닥 상장사를 인수하려 한 신일그룹과 닮은 방식이다.

실제로 기자가 방문한 S사 역시 ‘개인계좌로 투자금을 송금할 것’을 요구했다. GS칼텍스 협력업체를 인수한다는 주장도 신빙성이 떨어진다. GS칼텍스 관계자는 “우리는 부탄올을 하청업체로부터 구입하지 않는다”며 “여러 곳에 확인해봤지만 해당업체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다”고 밝혔다.

비슷한 방식으로 투자자를 끌어모으는 B업체는 “두바이에 본사가 있다”고 홍보한다. 투자 담당자는 “코인 시장 경기가 좋지 않아 원래 이달 초 상장 예정이었으나 이달 말로 미뤄졌다”며 “코인의 현재 가격은 3500원이고, 구입하려면 내 개인 계좌로 입금하면 된다”고 홍보에 열을 올렸다. 그러면서도 “현재 본사에서 지갑(암호화폐 전자지갑)을 잠가 당장은 코인 지급이 어렵다. 추후 지급할 예정”이라고 했다.

박성준 동국대 블록체인연구센터 센터장은 “발행 주체가 불분명한 코인에 대한 투자 유도가 너무 많아 국가 차원에서 ‘보이스피싱’처럼 단속해야 할 정도”라며 “투자금을 개인계좌로 송금하라는 업체는 무조건 사기라고 봐야 한다”고 경고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불법사금융피해신고센터에 접수된 유사수신 신고상담 건수는 총 712건이다. 이 중 암호화폐 관련 신고상담 건수는 453건으로 전체의 64.6%였다. 2016년(53건에)과 비교하면 8배 이상으로 늘었다.

상황이 이렇지만 암호화폐 투자권유 행위를 유사수신행위로 처벌하긴 쉽지 않다. 원금 보장이나 투자 수익률을 약속하지 않고 에둘러 이야기하는 경우가 늘고 있어서다. 보물선 사기 의혹의 핵심인물로 지목된 유지범 전 신일그룹 회장 역시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수익 보장을 한 적 없어 유사수신으로 처벌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중앙일보 8월 17일자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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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영 금융감독원 불법금융대응단 부국장은 “예전에는 코인 투자를 홍보하며 원금 및 수익보장을 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해외에 본사를 두고 무슨 사업을 한다는 식으로 패턴이 변하고 있다”면서 “현재 국내에선 암호화폐 발행을 통한 자금 조달(ICO)이 금지된 만큼 코인 투자엔 상당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오원석 기자 oh.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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