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0명’.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가 최근 밝힌 2022년까지 국내 인공지능(AI) 분야 연구자 부족 숫자다. 삼성·LG·현대차 등 기존 대기업은 물론 네이버와 같은 인터넷 기업들도 앞다퉈 AI 전문인력을 뽑으려고 하지만 수요보다 공급이 턱없이 부족하다. 설상가상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기업들이 한국 내에 쓸 만한 인력이 보이면 입도선매에 나서고 있다. 이런 상황은 기술 수준 격차로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미국의 AI 기술 수준이 100이라면 유럽 88.1, 일본 88.0. 중국 81.9. 한국 78.1이다.
26세 김태훈씨 실리콘밸리서 영입 #최소 연봉 3억원에 머스크 회사로 #한국, 선진국 비해 비전·연봉 열악 #대기업서 쓰려 해도 전문인력 부족
27일 오전 울산과학기술원(UNIST)에서는 ‘김태훈 UNIST 동문, AI 개발자로 실리콘밸리 간다’는 보도자료를 뿌렸다. 2015년 8월 전기전자컴퓨터공학부를 졸업한 올해 만 26세의 김씨가 미국 실리콘밸리의 비영리 AI 연구기업 ‘오픈AI’에 개발자로 합류한다는 얘기였다. 오픈AI는 테슬라의 창업주 일론 머스크 등 실리콘밸리의 유명 인사들이 인류에 기여하는 안전한 인공지능 구현을 위해 설립한 비영리 AI기업이다. 김씨는 최근 3년짜리 산업기능요원 병역을 막 마쳤다. 밝히진 않았지만 그가 받을 연봉은 30만~50만 달러(약 3억3400만~5억570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학부 출신의 한국 AI 전공자를 거금으로 입도선매한 사례다. 다음달 1일 출국을 앞둔 김씨를 27일 오후 대구시 달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 어떻게 오픈AI로 가게 됐나.
- “2015년 8월 졸업 당시에 이미 오픈AI 등에서 러브콜을 받았다. 병역 문제만 없었으면 벌써 미국으로 갔을 거다. 면접은 올 초에 봤다. 당시 휴가를 이용해 미국에 갔다. 오픈AI에는 MIT·스탠퍼드 등 세계 유수의 인재들이 모여 있고 대부분이 박사학위 소지자다. 기대도 되지만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 왜 학부생에 불과한 사람을 불렀을까.
- “AI 연구는 기존 논문에 사용된 코드를 가져와서 변형해 쓰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그 코드를 공개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재학 시절 딥마인드와 애플 논문의 비공개 코드를 구현해 20여 차례 오픈 소스로 공개했던 걸 인상적으로 평가한 것 같다. 누구보다 빨리 제대로 이런 작업을 해왔다.”(김씨가 공개한 오픈소스는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다. 그간 구글 브레인의 수장 제프 딘 등 실리콘밸리의 유명인들이 그의 오픈소스를 보고 함께 일하자고 제안해왔다. 김씨는 2014년 국내 최초로 국제수퍼컴퓨터대회 본선에 진출했고 2013년에는 교내 해킹동아리에서 활동하며 ‘화이트햇 콘테스트’에서 국방부장관상을 받기도 했다.)
- 왜 석·박사를 하지 않고 학부만 마치고 가나. 미국에 가면 연구자라기보다는 스페셜리스트의 역할을 하는 것 아닌가.
- “오픈AI에 가서 일하면서 배울 수 있는 것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우수한 연구자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는지 배우고 싶다. 그리고 충분히 배웠다고 생각되면 실리콘밸리에서 창업에 도전할 계획이다. 무엇을 하든 기술로 세상을 바꾸는 것이 꿈이다.”
- 이런 인재가 해외로 나간다니 아쉽기도 하다. 국내에서는 AI 인력 부족이 심각하다.
- “언젠가 한국으로 돌아와 뛰어난 연구자들이 빛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다. 나는 지금 배움이 우선 목적이다.”(최재식 UNIST 전기전자컴퓨터공학부 교수는 “아쉽지만 학생 입장에서는 공부하고 나서 제일 좋은 기업으로 가고 싶어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한국에서는 인력이 부족하다고 하지만 선진국의 연봉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낮고, 무엇보다 미국 기업들이 AI의 미래 비전을 선도하고 있기 때문에 고급인력을 빼앗길 수밖에 없다는 게 최 교수의 설명이다.)
◆ 오픈소스
소프트웨어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 수 있도록 일종의 프로그래밍 ‘설계도’인 소스코드를 무료로 공개·배포하는 것을 말한다. 유용한 기술을 공유함으로써 누구나 자유롭게 소프트웨어 개발과 개량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수한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 바탕을 두고 있다.
대구=허정원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