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역할론 온도차 … 문 대통령·트럼프 두달째 통화 안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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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가족 상봉 행사 마지막 날인 26일 북측 가족들이 금강산호텔에서 버스를 타고 먼저 떠나며 작별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이산가족 상봉 행사 마지막 날인 26일 북측 가족들이 금강산호텔에서 버스를 타고 먼저 떠나며 작별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4차 방북 취소에 대해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26일 “이로 인해 오히려 문재인 대통령의 역할이 커진 것 아닌가 싶다”고 밝혔다. 김 대변인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북·미 관계가 경색된 상황에서 막힌 곳을 뚫어주고 북·미 간 이해의 폭을 넓히는 데 문 대통령의 촉진자·중재자로서의 역할이 더 커진 게 객관적인 상황”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한·미, 개성 사무소 놓고 이견 노출 #폼페이오 방북 취소에 해석 갈려 #전문가 “9월 남북 정상회담에 부담” #청와대 “문 대통령 역할 커져” 주장

9월 평양에서 남북 정상이 만나기로 한 것에 차질이 없을지에 대한 질문엔 “없다. 그런 구도 속에서 일정과 안건들도 결정될 것”이라고 답했다. 문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밝힌 것처럼 남북관계가 북·미 관계에 종속되지 않으며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비핵화를 촉진한다는 원칙을 유지하겠다는 취지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후 강경화 외교부 장관, 조명균 통일부 장관, 서훈 국정원장 및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등 관계 장관과 청와대 참모진을 참석시킨 가운데 2시간 동안 폼페이오 방북 취소를 보고받고 향후 대책을 논의했다.

청와대는 대외적으로 한국의 역할론을 강조했지만 미국 정부의 기류와는 온도차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9월 남북 정상회담에 부담이 갈 수밖에 없다는 얘기가 나온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는 “폼페이오 장관이 다녀온 뒤 이를 바탕으로 김정은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함께 적당한 의제를 정하고 문 대통령이 이를 승인하는 듯한 모양새로 이어지면 미국이 협상에서 더 불리해질 수 있다는 점이 이번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 취소에 큰 변수로 작용한 것 같다. 이번 취소는 (미국이) 남·북·중 모두에 주는 메시지가 있는 셈”이라고 분석했다.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장도 “9·9절과 시 주석 방북, 3차 남북 정상회담 등은 미국이 아닌 남·북·중이 짠 시간표로 여기에 끌려갈 필요 없다는 판단을 미국은 한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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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미 공조를 놓고도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정부가 당초 이달 중 개소를 추진했던 개성 연락사무소를 놓곤 미 국무부 측이 제재 위반 여부 등을 “살펴보고 있다”고 답해 양국 간 이견을 공개 노출했다. 정부 일각에선 이와 관련, 연락사무소 개소가 남북 간 협의 문제로 인해 다음달로 늦춰질 수도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이 교착 국면이 계속되는데 한·미 정상 간 소통은 이전보다 뜸한 점도 지적된다.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간 통화는 북·미 정상회담이 열렸던 지난 6월 12일이 마지막이었다.

폼페이오 장관의 4차 방북 취소 직후엔 한·미 외교장관만 통화했다. 윤덕민 한국외국어대 석좌교수는 “북핵 문제가 잘 풀리지 않는 상황에서 남북관계만 발전시키는 데 대한 문재인 정부의 부담이 커졌다”며 “5월 북·미 정상회담 취소 때는 2차 남북 정상회담 자체가 일정 부분 봉합 역할을 했는데 이번엔 북핵 문제의 실질적 진전을 유도했을 때만 의미 있는 3차 남북 정상회담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반면 한 일본 언론은 미·일 정상 간 소통을 강조했다. 요미우리신문은 “22일 통화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종전선언에 대한 의견을 묻자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비핵화 진전이 없는 현시점에서는 받아들이면 안 된다’고 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런 아베 총리의 의견을 참고해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을 취소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유지혜·강태화·권유진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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