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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식에 빠진 교황들, 그들의 최대 적은 비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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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8호 30면

의사가 되짚어본 질병과 죽음, 과학

진실을 읽는 시간

진실을 읽는 시간

진실을 읽는 시간
빈센트 디 마이오·
론 프랜셀 지음
윤정숙 옮김, 소소의책

소설로 읽는 법의학의 세계 #과학수사는 얼마나 믿을 만한가 #명확한 결론에도 편견 섞여 있어 #인물로 보는 수술의 역사 #대동맥류로 고생한 아인슈타인 #그가 상대적으로 장수한 까닭은 #가장 양심적 대답은 ‘모른다’ #자살·타살도 때때로 분간 어려워 #“이것이 최선인가” 끝없이 물어야

메스를 잡다
아르놀트 판 더 라르 지음
제효영 옮김, 을유문화사

암막 커튼을 친 어두운 강의실 전면 빔 스크린에 교수가 사진 한 장을 띄웠다. 법의학 수업 첫 시간이었고, 사진 속 남자는 무릎을 꿇고 있었다. 허리를 앞으로 기울인 남자의 목을 휘감고 뒤로 뻗어 나간 노끈은 문고리에 팽팽하게 묶여있었다. 시취(屍臭)마저 느껴지는 사진에 고요해진 학생들을 둘러본 교수가 입을 열었다.

“이 사람은 자살일까요, 타살일까요?”

무릎까지 땅에 닿은 시체는 명백히 타살처럼 보였지만, 질문 의도를 파악해 선다형 문제를 푸는 데 최적화된 의대생들은 ‘자살’이라 답했다. 피식 웃은 교수가 다음 질문을 던졌다.

“왜?”

대중문화의 서사는 빠르고 분명한 답을 요구한다. 과학 수사물 시리즈는 한 시간짜리 방영분 안에 사건 한 건을 뚝딱 해결한다. 답을 밝히지 못하는 과학수사관이나, 머리카락에 밴 썩은 냄새에 잠을 뒤척이는 법의학자는 텔레비전에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현실의 법의학자인 빈센트 디 마이오는 진실을 밝히는 게 직업적 임무라면서도, 인간의 심장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모르겠다며 진저리치듯 고백한다.

16세기 이탈리아에서 활동했던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가 펴낸 『인체의 구조에 대하여』에 실린 삽화들. 의학 발전은 아무런 비판 없이 따르던 전통 처방에 도전해 새로운 사실 발견이 잇따르면서 가능했다. [사진 을유문화사]

16세기 이탈리아에서 활동했던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가 펴낸 『인체의 구조에 대하여』에 실린 삽화들. 의학 발전은 아무런 비판 없이 따르던 전통 처방에 도전해 새로운 사실 발견이 잇따르면서 가능했다. [사진 을유문화사]

미국의 원로 법의학자 디마이오가 범죄소설가 프랜셀과 협업한 『진실을 읽는 시간』은 소설이 아니라는 게 아쉬울 정도로 캐릭터가 살아있고, 배경 서술은 효율적이며, 문단들은 속도감 있게 배치돼 있다. 이야기에 빨려들다 보면 어떤 확실한 결론에 도달해버릴 것만 같지만, 그는 늘 같은 단서를 붙이며 브레이크를 건다. 분명해 보일수록 사실이 아닐 수 있다고. 대표 사례가 살해 혐의로 기소된 이민자들을 다룬 7장 ‘비밀과 퍼즐’이다. 허술한 초동수사가 이민자 혐오와 얽히면서 과학수사가 빛을 잃는 과정을 낱낱이 보여준 그는 진실 혹은 정의라 여긴 것들이 편견일 수 있음을 역설한다.

법의학자의 판정은 망자보다 산 자에게 영향을 미친다. 사체에만 집중해 과학적 결론을 끌어내는 것, 그것이 법의학의 지상과제라는 디 마이오의 말은 그만큼 의무의 이행이 어렵다는 것을 반증한다. 책에는 외부 영향으로 인해 사건해결이 진창에 빠지는 모습이 자주 묘사되는데, 디 마이오는 특히 언론의 성급한 보도에 강한 불신을 드러낸다. 오바마 대통령까지 나서 인종범죄라 규탄했던 트레이본 마틴 피격 사건을 다룬 1장 ‘흑백에 가려진 죽음’에는 이런 난맥상이 구체적으로 묘사된다. 법의학적 증거는 흑인 소년의 폭력에 대응한 백인 남성의 정당방위임을 지시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믿지 않는다. ‘진실이 언제나 환영받는 것은 아니’라는 그의 자조를 듣다 보면, 명확한 결론만 자판기처럼 제시하는 전문가를 선호하는 언론이 각성해야 할 곳은 미국만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된다.

의사 중에서도 극소수인 법의학자가 오랜 경험을 풀어놓은 이 책은 그 자체로 훌륭한 사료인 동시에 문화자산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임상경험을 다룬 의사들의 에세이를 보면 “환자나 대상자의 동의는 받은 건가?”라는 의문이 드는 것은 피할 수 없다. 이는 ‘자신에게 몸을 의탁한 사람에 관한 글을 쓰는 이에게는 더 엄격한 윤리가 요구되지 않나?’라는 의문이며, ‘대중의 호기심이 환자의 프라이버시권에 선행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기도 하다.

메스를 잡다

메스를 잡다

아르놀트 판 더 라르의 『메스를 잡다』는 위의 질문들을 명민하게 우회한다. 네덜란드 외과 전문의인 저자는 임상경험을 쓰는 대신 역사적 인물과 관련된 수술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책은 인류 최초의 수술에서 시작한다. 수렵, 채집, 이주가 삶의 방식이던 선조들은 상처에 쉽게 노출됐을 것이다. 상처를 보살피는 일이 최초의 외과적 치료일 거라 추정한 저자는 수술의 역사의 중요 변곡점을 역사적 인물들의 일화로 짤막하게 제시한다.

이를테면 5장인 ‘비만’은 교황들을 다룬다. 수 세기 동안 교황들이 공통적으로 보인 문제가 ‘폭식’임을 지적한 그는 비만 때문에 생긴 교황들의 건강문제를 지적하며 폐쇄성수면무호흡증후군 수술법과 비만 수술에 대한 이야기를 능란하게 풀어간다. 또한 16장 ‘대동맥류’에서는 대동맥류 진단을 받은 아인슈타인이 당시 의학적인 상식 수준보다 훨씬 오래 살았다는 점을 제시하며, 기대수명의 ‘상대성’을 통해 치료 기대효과의 개인차를 설명하기도 한다.

각종 수술도구들이 그려진 검은 표지는 무거운 인상을 주지만, 서술자와 대상자 간의 거리가 확보된 탓에 책은 의외로 유쾌하다. 그럼에도 가끔 이 외과의사의 내밀한 고백을 마주하는 때가 있는데, 수술이 끝나고 이것이 최선인지 스스로를 의심하는 모습이 그렇다. 자신만만한 분위기로 이런 내면을 감추려 든다고 고백한 그는 선택이 정말 옳았는지 끝내 알 수 없을지라도 ‘그저 꾸준히 해 나가는 것’을 소명으로 여긴다.

다시 강의실로 돌아오자. 교수는 사진 속 남자가 왜 자살이라고 생각하느냐며 묻는다. 학생들은 묵비권을 행사하며 눈치를 본다. 교수는 장난기 어린 얼굴로 자신도 모른다고 말하며 웃는다. 처음부터 함정 질문이었다. 통념상, 목을 매는 의사(縊死)인 경우 발이 땅에 닿으면 살 거라 여기지만, 저산소증은 목의 주요 혈관을 막기만 해도 유발되며 이를 위해 몸무게 전체가 실릴 필요는 없다. 따라서 이 경우 자살과 타살의 가능성은 모두 존재한다.

‘모른다’는 대답은 자주 양심적인 답변이 된다. 그러나 안다고 빠득빠득 우기는 자들이 살아남는 세상에서 ‘모른다’고 말하기란 쉽지 않다. 어쩌면 첫 번째 법의학 수업에서 배운 것은 질식사의 종류만이 아니라 ‘모른다’는 말의 소중함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아름답게 끝내고 싶지만, 온화한 투로 중용을 지키던 그 교수는 수업 도중 어떤 사건에서 자신과 반대 의견을 낸 다른 법의학자에 대해 맹비난을 퍼부었다. 인간이란 결국 원래 이런 모순덩어리인지 모르겠고, 여전히 소설이 유효한 이유 역시 도대체 우리 심장에 뭐가 들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현석 소설가·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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