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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1TV 『논픽션 드라마…송면이의 서울행』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6면

6·25전쟁으로 인한 민간인 사상자수는 99만. 80년부터 86년까지 7년간 산업재해로 쓰러진 사상자수는 97만.
26일 밤 방영된 KBS-lTV 『논픽션드라마』「송면이의 서울행」 (극본 김혜정 연출 김종식)은 세계최고의 산재왕국인 우리나라가 치르고 있는 또 다른 「전쟁」의 한 단면을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가난한 농가의 아들 문송면은 중학교졸업을 앞두고 서울에 있는 공장에 취직한다. 수은충만식 온도계와 압력계를 제조하는 이 공장의 작업실은 당연히 있어야 할 환기통은 커녕 창문조차 없었다. 이런 점에서 그는 일당 3천3백60원을 벌기 위해 전쟁터에 뛰어든 「산업전사」였던 것이다. 어린 「전사」는 그러나 2개월 후 몸에 이상이 생겨 회사를 그만둔다.
그의 피 속에는 놀랍게도 국내 직업병인 정기준치의 2·5배, 세계보건기구기준치의 16배가 되는 수은이 검출된다.
이 드라마는 경제성장의 역군으로 미화되고 있는 근로자가 막상 재난을 당했을 때 국가와 기업으로부터 어떻게 취급되고 있는가를 너무도 분명히 보여 주었다. 노동부·기업주·변호사·법률구조공단은 약속이라도 한 듯 한결같이 무관심과 냉대를 보여줌으로써 그 속성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일간지에 보도된 뒤에야 비로소 역학조사가 실시되고 산재처리가 이루어진다. 하지만 지칠대로 지친 어린 「산업전사」는 고통스런 표정으로 눈을 감는다. 이렇게 해 이 땅에서 최초의 수은중독사망자가 탄생한다.
이 드라마는 국제적 분업의 일환으로 도입된 공해·위험산업으로 인한 필연적인 비극을 소년의 뇌속에 자리잡은 수은이 차례로 일으키는 무서운 증세를 통해 형상화하고 있다. 또 재미의 요소를 과감히 포기하고 냉정하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이야기를 전개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압축된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성공했다.
가장 심각한 문제를 코미디의 카타르시스기능에 맡겨 버리고 있는 현실 속에서 드라마 가운데 노동·사회단체에 의한 「산업재해노동현장」의 장면을 삽입, 조직적이고 집단적인 문제해결 방식이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준 것은 이 드라마의 빛나는 성과였다.

<이하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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