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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마총, 서삼릉 태실 … 역사 속 잠든 경기 향토유적 빛 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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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경기 북부에서 잊혀져 가는 향토문화유적에 대한 재평가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파주시 ‘의마총(義馬塚)’과 고양시 서삼릉(사적 제200호) 내 태실(胎室)이 대표적이다. 각각 향토문화유산 지정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추진되고 있다. 역사학자와 전문가들도 호응하고 있다.

광해군 이름 하사, 유일한 말 무덤 #복원 마치고 ‘향토유산’ 지정 신청 #일제가 왕족 태항아리 파괴해 모은 #서삼릉 태실도 유네스코 등재 추진 #“스토리텔링 가능한 소중한 문화재”

파주시 광탄면에 있는 의마총은 조선 시대 임금(광해군)이 이름을 하사한 유일한 말 무덤이다. 의마총 명칭도 ‘의로운 말의 무덤’을 뜻한다. 연안 이씨 종중의 묘역 내에 있다. 각종 문헌이 전하는 대로 3단으로 돌을 쌓아 최근 복원됐다.

경기도 파주시 ‘의마총(義馬塚)’을 우관제 파주문화원 원장이 소개하고 있다. [전익진 기자]

경기도 파주시 ‘의마총(義馬塚)’을 우관제 파주문화원 원장이 소개하고 있다. [전익진 기자]

말이 묻힌 사연은 이렇다. 이유길(1576∼1619) 장군이 전장에서 죽음을 앞두고 애마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애마는 1000㎞ 거리를 사흘 동안 달려 집을 찾아왔다. 그리고는 장군의 죽음을 알리고 숨이 끊어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 장군은 청나라가 대륙으로 확장을 꾀하며 공격해 오자 명나라를 지원하기 위해 조선 원군을 이끌고 파견됐다. 1619년 심하(深河·지금의 중국 심양 지역) 후차전투에서 크게 패하고 전사했다. 죽음을 앞두고 ‘3월 4일 죽다’라는 뜻의 글 ‘3월4일사(三月四日死)’를 삼베적삼 옷자락에 핏물로 적어 말의 안장에 매어 주고 말을 채찍질해 고향으로 돌려보냈다고 한다.

이유길 장군의 후손 모임 연안 이씨 청련공파 도문회는 의마총에 대한 원형 복원작업을 마친 후 파주시에 향토문화유산 지정을 최근 신청했다. 이영춘 전 국사편찬위원회 연구편찬실장은 “장군의 묘소와 의마총은 충의의 정신을 선양하는 유적이며, 스토리텔링의 소재가 될 수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라며 “지방 문화재로 지정해 보존할 가치가 높다”고 했다.

이호재 연안 이씨 수도권 종친회장은 “가치가 높은 역사의 현장이 제 모습을 잃어버리면서 충직하고 의로웠던 말의 이야기도 잊히지 않을까 안타까워 복원 후 향토문화유산 등재를 신청했다”고 말했다.

고양시 서삼릉 내 태실(胎室). [사진 서삼릉태실연구소]

고양시 서삼릉 내 태실(胎室). [사진 서삼릉태실연구소]

고양 서삼릉태실연구소는 경북 성주군, 충남 서산시와 협력해 공동으로 태실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할 계획이다. 서삼릉 태실은 일제에 의한 민족정기 유린의 현장이다. 일제는 전국에 있던 왕족의 태실을 파괴한 뒤 태 항아리를 모아 이곳에 서양의 공동묘지처럼 보관했다. 조선 시대 왕의 태실비(胎室碑) 22위와 왕자, 공주의 태실비 32위가 양쪽으로 늘어서 있다. 태실비에는 주인공과 건립 시기, 원래 위치 등이 기록돼 있다.

성주군은 월항면 인촌리에 위치한 ‘세종대왕자 태실’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해 2007년부터 매년 경복궁에서 태봉안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서산시 운산면 태봉리에 있는 명종 태실은 지난 3월 보물 제1976호로 지정됐다. 조선의 역대 왕 태실 중 규모가 크고,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김득환 서삼릉태실연구소 소장은 23일 “성주군와 서산시와 공동으로 태실의 가치를 국내외에 알리는 학술세미나를 여는 등의 방법으로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협력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성호 한국선사문화연구소 소장은 “대한민국에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조선왕조 500년 동안 이어 온 태실과 태 문화가 오롯이 살아남아 있다”며 “이러한 조선왕조의 태 문화를 정립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것은 세계 인류의 가치를 드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삼릉태실연구소는 태실의 역사성과 상징성을 국내외에 알리기 위해 2013년부터 해마다 광복절에 서삼릉 태실에서 역사 관계자와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역사 답사를 진행하고 있다. 또 서삼릉 태실에서 출토된 조선 역대왕 18명의 태 항아리 31개를 재현 제작해 연구소에 전시 중이다.

전익진 기자 ijj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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