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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고괴담’ 20년 … 우리 시대 학교는 왜 공포스러운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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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왼쪽부터 20년 전 ‘여고괴담’ 1편이 배출한 배우 박진희·김규리·최강희·윤지혜. [사진 씨네2000]

왼쪽부터 20년 전 ‘여고괴담’ 1편이 배출한 배우 박진희·김규리·최강희·윤지혜. [사진 씨네2000]

공포영화 ‘여고괴담’ 시리즈가 올해 20주년을 맞았다. 1998년 나온 1편은 한국형 학원 공포물이란 새 장르를 개척하며 흥행성공을 거뒀다. 이후 5편까지 이어진 시리즈는 매번 ‘호러퀸’을 탄생시키며 신인 여성 배우의 등용문이 됐다. 최강희·박진희·박예진·김규리·공효진·박한별·송지효·김옥빈 등이 모두 ‘여고괴담’ 출신. 과거 한국 공포물이라면 드라마 ‘전설의 고향’을 떠올리던 인식도 바꿔놓았다. 조폭 코미디가 아닌데도 속편이 네 편이나 나온 것도 처음이었다.

시리즈 5편 특별전 26일까지 #최강희·박진희 등 호러퀸 배출

왜 하필 여자 고등학교였을까. “한국 입시·교육제도가 바뀌지 않는 한 학교 자체가 공포고, 창살 없는 감옥이다. 또 괴담 하나쯤 없는 여고도 없다.” 이 영화의 제작사 씨네2000 이춘연 대표의 말이다.

20주년을 기념해 한국영상자료원이 서울 상암동 시네마테크KOFA에서 26일까지 특별전을 연다. 1~5편 상영과 함께 각 영화를 연출한 감독들이 관객과 대화시간을 마련했다. 1편의 석고상, 2편의 교환일기 등 주요 소품도 전시한다.

‘여고괴담’ 시리즈는 B급 장르로 여겨지던 공포영화의 틀에 동시대 10대의 고민을 녹여낸 신인 감독들의 개성 강한 연출도 화제가 됐다. 학교를 공포스런 입시감옥으로 설정하고 감수성 예민한 여고생들의 고통, 일부 교사의 성추행 등 부조리한 행태를 포착했던 1편 ‘여고괴담’(감독 박기형)은 사회적 반향도 컸다. 영화 후반 귀신의 존재가 위협적으로 드러나는 학교 복도 점프컷 장면은 두고두고 회자됐다.

2편의 주연을 맡은 이영진·박예진. 이 시리즈는 이처럼 충무로의 신인 여성 배우의 등용문 역할을 했다. [사진 씨네2000]

2편의 주연을 맡은 이영진·박예진. 이 시리즈는 이처럼 충무로의 신인 여성 배우의 등용문 역할을 했다. [사진 씨네2000]

이듬해 나온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 메멘토모리’(감독 김태용·민규동)는 한국영화에서 금기시됐던 동성애를 다루며 ‘교환일기’를 통해 10대 소녀들의 성장통을 감각적으로 표현했다. 김규리·박예진·이영진·공효진 등 모든 출연진이 2000년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여자신인연기상을 공동수상하는 진풍경도 거뒀다.

이 시리즈의 감독들, 배우들과 함께 22일 특별전 개막식에 참석한 민규동 감독은 “영화감독이 되겠다는 생각조차 없었던 철부지 바보 같은 저를 20년 세월 영화감독으로 살 수 있게 해준 인생의 전환점”이라며 “2편을 공동 연출한 김태용 감독과도 이 영화가 아니었으면 영화감독으로 못 살았을 것 같단 얘기를 자주 한다”고 말했다.

학교에서 죽은 친구의 목소리가 들린단 설정의 4편 ‘여고괴담4: 목소리’(2005)를 만든 최익환 감독은 1편의 조감독으로도 참여했다. 그는 “‘타워’(2012)를 연출한 김지훈 감독이 당시 연출부 세컨드, 류승완 감독이 소품담당이었는데 한겨울에 셋이 꽝꽝 언 왁스로 마룻바닥에 광을 내다 불이 났다. 그때 (제작사) 사장님이 멀리서 흐뭇하게 보며 ‘대박 난다, 이 영화’ 하셨던 게 아직도 기억난다”고 했다.

이 시리즈는 예술고등학교 학생들의 질투어린 관계를 부각한 3편 ‘여고괴담 세 번째 이야기: 여우계단’(2003, 감독 윤재연), 우정의 맹세를 공포의 근원으로 삼은 5편 ‘여고괴담5: 동반자살’(2009, 감독 이종용) 등 시대 변화에 맞춰 10대의 갈등과 교실 풍경을 담아왔다.

‘여고괴담’은 앞으로도 계속된다. 이춘연 대표에 따르면 내년 여름 개봉을 목표로 현재 6편을 준비 중이다. 독립영화 ‘슬리핑 뷰티’(2008)로 데뷔한 이한나 감독이 메가폰을 잡는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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