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비극을 낳은 정치문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전두환전대통령의 침통한 대 국민 사과를 들으면서 문득 「마이더스」왕의 동화가 떠올랐다. 무엇이든 건드리기만 하면 황금으로 바꾸는 신비한 손을 가진 「마이더스」왕은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손을 대 금을 만들고는 세상 제일의 부자가 됐다고 기뻐하다가 음식도 물도 금이 되는 바람에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게 되고 급기야 귀여운 딸까지 금으로 만들고 만다. 울면서 후회한 왕은 신에게 빈다. 자기를 다시 보통사람으로 만들어 달라고.
전두환씨도 8년전에는, 아니 불과 1년전까지만 해도 「마이더스」의 손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손이 가면 1백억, 천억의 돈이 쉽게 나오고 권력과 영화가 쏟아졌다. 삽시간에 친·인척들은 부자가 되고, 부하들은 떵떵 울리는 세도가가 되었다.
그러나 전씨의 손은 이제와 알고 보니까 황금을 만드는 손이 아니라 모든 것을 초토화시키는 손이었다. 그의 손이 간 곳마다, 그와 인연이 닿은 사람마다 비리와 의혹의 말썽이 일고 거덜났다.
형제와 종형제, 처남과 동서들이 잡혀가고 부하와 비서들이 불행해지거나 불행해질까봐 두려워하고 있다. 그의 고향 생가는 불타고 고향사람이나 한 동네 사람들도 그와 함께하는것을 꺼려하고 눈치를 본다.
마침내 그는 자신의 한 몸 육신의 땅도 찾지 못한 채 정처 없는 현대판 유배의 길에 올랐다. 그도 「마이더스」처럼 마지막에는 『생업을 위해 부지런히 오가는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과 행복이 한없이 부럽게 여겨진다』고 보통사람이기를 바랐지만 이미 때를 놓친 뒤였다.
황금을 만들던 손이 거꾸로 자신과 주변을 온통 초토화시키는 결과로 끝난 전두환씨의 이런 비극은 도대체 어디서 왔을까.
혹자는 말한다. 그가 사단장만 했던들 이런 비극은 없었을 것이라고. 대통령은 과분한 자리였다고 말한다. 또 어떤 이는 5공 성립의 도덕성도, 정당성도 없었는데다 너무 많은 피와 한을 불러 비극이 왔다고 말한다. 재임기간 중 정당성 없는 권력장악을 만회할 많은 시간과 기회가 있었는데도 다 놓쳐버리고 권력과 공직을 사물시한데서 그의 비극은 초래됐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다 일이 있고 옳은 얘기인 것 같다. 비극의 원인과 책임은 모두 그 주인공에게 있음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정당성 없이 권력을 잡고 능력 밖의 대통령에 올랐으며 도덕성 없이 권력남용을 한 사람이 다름 아닌 그다.
그러나 곰곰 따져보면 전씨의 비극은 그에게 책임을 지우고 그에게서 원인을 찾는다고 다 설명될 수 없다. 왜 그가 정당성 없이 권력을 잡을 수 있었으며 어떻게 도덕성 없이 권력남용을 할 수 있었던가. 무엇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는가 하는 상황적 논리를 찾아보고 거기서 교훈을 얻는 것이 지금 우리가 생각할 일이 아닌가 한다.
전씨의 비극은 거슬러 올라가면 유신에서 그 씨앗이 자랐다고 할 수밖에 없다. 전씨와 5공 주도세력들은 박정희대통령의 권위주의 치하에서 잔뼈가 굵었고 그 주변에서 정치와 권력형태를 체득한 사람들이었다. 일찌기 정치장교였던 그들에게 유신은 그들의 호흡과 의식을 결정한 환경이었고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방식이나 대통령을 모시는 방식을 그들은 오직 박대통령과 그 주변을 통해서만 알고 배운 사람들이었다.
전씨의 한 전기에 따르면 전씨는 월남전에 가있던 71년에 벌써 『…우리나라의 실정에 맞는 한국적 민주주의를 토착화시킬 때』라고 박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낸 것으로 되어있다.
5공 8년의 통치방식은 유신시대의 그것과 같거나 더 강화된 차이밖에 없다. 권력의 집중과 복종형의 참모 진용, 법이나 합리성보다는 집권자의 의지를 중시하는 정권내부의 문화…모든 것이 다를 것이 없다.
한마디로 5공은 유신의 슬픈 아들인 셈이었다. 당시 그들의 의식구조로는 당연하고 그런 일은 으레 그렇게 처리하는 것으로 알았던 것이 이제와서 보니 모조리 비리의 인이 되고 권력남용의 씨앗이 된 게 아닌가. 재벌들로부터 일해재단기부금을 받으면서 그것이 범죄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며, 일가 중에 출세한 사람이 있으면 가족들이 여덕을 입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 일이 거듭되고 도가 넘어도 무신경하게 되고 마침내 풍속이 되고 문화가 돼버린 것이 5공 비리요, 전씨 비극의 원인이 아닐까.
이렇게 본다면 전씨의 비극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풍속이 되고 문화가 돼버린 5공의 의식구조가 청산돼야 전씨의 비극도 끝나고 5공 비리도 청산될 수 있는 것이다. 70년대부터 연면히, 내밀하게 내려오는 유신문화, 그에 이은 5공 문화는 전씨의 은둔과 국회청문회·검찰수사만으로 단절되지 않는다.
아직도 박정희씨의 대통령직 수행방식은 우리 권력문화의 교과서로 남아있고 대통령을 모시는 참모의 자세는 여전히 유신 때의 그것을 중요한 모범으로 삼고 있다. 이런 문화가 남아있는 한 전씨 비극의 잠재성은 우리사회에서 사라질 수 없다.
6공은 스스로 새로 태어났다고 하지만 6공이 5공의 요소를 다량 계승함은 부인할 수 없고 거슬러 올라가 유신문화에도 익숙함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 미운 자를 닮는다는 격으로 야권에도 이런 문화의 요소가 있다면 지나칠까.
유신과 5공에서 당연하게 여겨졌던 일, 으례 그렇게 해오던 일들이 6공에서도 당연시되고 으례 그렇게 처리되지나 않는지 한번 더 깊이 생각해 보도록 전씨의 비극은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논설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