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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죽이겠다”는 남성에 총기 내준 경찰…결국 난사 사건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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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21일 오전 경북 봉화군에서 70대 남성이 스님 1명과 면사무소 직원 2명에게 총기를 난사했다. 폴리스 라인이 쳐져 있는 봉화 소천면 사무소 전경. 봉화=백경서 기자

21일 오전 경북 봉화군에서 70대 남성이 스님 1명과 면사무소 직원 2명에게 총기를 난사했다. 폴리스 라인이 쳐져 있는 봉화 소천면 사무소 전경. 봉화=백경서 기자

경북 봉화군에서 21일 총기를 난사해 3명의 사상자를 낸 70대 남성이 평소 “이웃을 죽이겠다”는 말을 한 정황이 포착됐는데도 경찰은 그에게 총기를 내준 것으로 드러났다.
경북 봉화경찰서에 따르면 이날 오전 봉화군 소천면 임기역 인근에 위치한 사찰에서 용의자 김모(77)씨가 스님 1명에게 엽총을 쐈다. 이어 김씨는 자신의 차를 타고 3.8㎞ 떨어진 소천면사무소로 향했다.

21일 오전 9시15분쯤 경북 봉화군 소천면사무소에서 발생한 엽총 난사 사고로 공무원 2명이 숨지고 민간인 1명이 부상했다. 사고가 난 면사무소 유리창에 탄흔이 선명하다. 경찰은 "피의자는 이날 오전 파출소에서 유해조수 수렵을 위해 엽총을 받아 나간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뉴스1]

21일 오전 9시15분쯤 경북 봉화군 소천면사무소에서 발생한 엽총 난사 사고로 공무원 2명이 숨지고 민간인 1명이 부상했다. 사고가 난 면사무소 유리창에 탄흔이 선명하다. 경찰은 "피의자는 이날 오전 파출소에서 유해조수 수렵을 위해 엽총을 받아 나간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뉴스1]

김씨는 면사무소로 들어가자마자 "손들어"라고 외친 뒤 직원 1명에게 총을 발사했다. 연이어 옆에 있던 직원 1명에게도 총을 쐈다. 민원 담당 손모(47) 계장과 이모(38) 주무관이 어깨와 가슴에 엽총을 맞았다. 이들은 닥터헬기로 이송됐으나 끝내 사망했다. 스님은 어깨부상을 당했으나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장에 있던 민원인과 직원 4명이 김씨를 제압해 출동한 경찰에 넘겼다.

21일 오전 9시15분쯤 경북 봉화군 소천면사무소에서 발생한 엽총 난사 사고로 공무원 2명이 숨지고 민간인 1명이 부상했다. 과학수사대가 감식을 위해 사고 현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경찰은 "피의자는 이날 오전 파출소에서 유해조수 수렵을 위해 엽총을 받아 나간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뉴스1]

21일 오전 9시15분쯤 경북 봉화군 소천면사무소에서 발생한 엽총 난사 사고로 공무원 2명이 숨지고 민간인 1명이 부상했다. 과학수사대가 감식을 위해 사고 현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경찰은 "피의자는 이날 오전 파출소에서 유해조수 수렵을 위해 엽총을 받아 나간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뉴스1]

이 사건으로 한적했던 시골 마을은 무겁게 가라앉은 분위기였다. 길에서 마주친 주민들은 모두 말을 아꼈다. 소천면 임기2리 마을회관 앞에서 만난 한 80대 주민은 "조용했던 마을이 난리가 났다"고 했다. 주민들은 김씨가 이웃과 평소 물 문제로 자주 다퉜다고 귀띔했다. 다른 주민은 "산 중턱에 김씨 집과 사찰이 있는데 수압이 낮아 물 때문에 많이 싸운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21일 오전 경북 봉화군에서 70대 남성이 스님 1명과 면사무소 직원 2명에게 총기를 난사했다. 사건이 발생한 사찰 전경. 봉화=백경서 기자

21일 오전 경북 봉화군에서 70대 남성이 스님 1명과 면사무소 직원 2명에게 총기를 난사했다. 사건이 발생한 사찰 전경. 봉화=백경서 기자

용의자 김씨의 집은 산 중턱에 있었다. 사건이 발생한 사찰은 이 보다 50m 정도 위에 있었다. 김씨의 집 앞 수도에서 물을 틀어봤으나 나오지 않았다.

사찰 옆에서 만난 50대 주민은 "2012년부터 여기 살았는데 높은 지대에 위치해 물이 잘 나오지 않아 우리도 공사를 한차례 했다"며 "최근 폭염과 가뭄으로 물이 더 안 나와 아랫집 사람(김씨)이 화를 많이 냈다"고 말했다.

21일 오전 경북 봉화군에서 70대 남성이 스님 1명과 면사무소 직원 2명에게 총기를 난사했다. 이날 찾은 봉화군 용의자의 집. 수도에서 물이 나오지 않았다. 봉화=백경서 기자

21일 오전 경북 봉화군에서 70대 남성이 스님 1명과 면사무소 직원 2명에게 총기를 난사했다. 이날 찾은 봉화군 용의자의 집. 수도에서 물이 나오지 않았다. 봉화=백경서 기자

경찰 등에 따르면 김씨는 지난 2010년 귀농했다. 4가구 정도가 상수도 배관을 설치해 위에서 내려오는 물을 나눠 썼는데 "스님이 위에서 물을 많이 써서 우리 집에 내려오는 물이 적고 수압이 낮다"며 자주 다퉜다.

10일 전쯤에는 김씨가 소천면사무소를 찾아 "스님이 물을 많이 쓰고 쓰레기를 소각해 연기가 집까지 내려온다"며 구두로 민원을 넣은 것으로 조사됐다. 소천면사무소 관계자는 "물 문제 등 김씨가 제기한 민원은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김씨가 민원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데 앙심을 품고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고 있다. 김씨는 이날 오전 7시50분쯤 유해조수구제용으로 파출소에서 자신의 엽총을 출고했다. 유해조수구제용이란 농사를 짓는 사람이 새 등 농사에 유해한 동물을 쫓으려고 소지하는 용도의 엽총이다. 김씨 역시 "아로니아 농사를 짓는데 까마귀가 자꾸 망친다"는 이유로 엽총을 보유하고 있었다.
사건 주변에서는 스님이 7월 30일 소천면파출소에 "김씨가 나를 총으로 죽이려 한다"고 신고한 점을 들어 인명피해를 예방할 수 있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찰에 따르면 스님은 이웃으로부터 "김씨가 당신을 죽인다고 했다"는 말을 듣고 파출소에 신고를 했다. 이후 파출소 관계자가 출동해 김씨의 총을 회수했다. 다음날 김씨는 "왜 내 소유의 총을 마음대로 가져가느냐"며 항의했고, 스님은 불안한 마음에 봉화경찰서로 "무섭다"며 진정서를 넣었다.

경찰은 지난 14일 김씨가 총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그가 직접 범행을 저지를 가능성이 작다고 판단해서다. 봉화경찰서 생활안전계 관계자는 "스님이 직접 살해 협박을 받은 것도 아니고 개인 사유 물품을 근거 없이 압수하고 있기도 어려웠다"며 "스님도 진정서를 취소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유해조수구제용의 경우 허가를 받은 뒤 매일 오전 5시부터 오후 9시까지만 사용하고 파출소에 반납해야 하는데 이날 오전 김씨가 파출소에서 총기를 가져갔다"고 덧붙였다.

익명을 요구한 군청 공무원은 "살해 협박을 하고 다닌 사람한테 총기를 내준 건 문제"라며 "농촌지역의 유해조수구제용 총기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봉화=백경서 기자 baek.kyungse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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