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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에 마신 양주, Whisky’일까 Whiskey’일까?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김대영의 위스키 읽어주는 남자(2)

위스키 덕후이자 싱글몰트 위스키 블로거다. 위스키를 공부하기 위해 일본에서 살기도 했다. 위스키와 위스키 라벨에 담긴 다양한 이야기를 소재로 위스키에 대한 지식과 그로부터 얻을 수 있는 삶의 지혜 등을 쓴다. <편집자>

특정 음식을 전문으로 하는 먹자골목에 들어서면, 가게 이름 앞에 원조가 붙는 건 보통이고, 태조에 시조까지 등장한다. 누가 먼저 이 골목에서 음식 장사를 시작했는지 가게 이름으로 겨뤄보자는 듯하다. 맛이 좋으면 어련히 손님이 찾아갈까. 그들 가게는 맛보다 역사가 더 중요한가 보다.

위스키에도 이런 원조 논쟁이 있다. 보통 위스키라고 하면 스코틀랜드가 떠오른다. ‘스카치블루’라는 위스키가 유명세를 떨친 덕이다. 한국은 물론 전 세계에서 엄청난 판매량을 기록 중인 발렌타인·조니워커 같은 위스키들의 고향이기도 하다.

다양한 종류의 조니워커 위스키. 스카치를 대표하는 위스키다. [사진 김대영]

다양한 종류의 조니워커 위스키. 스카치를 대표하는 위스키다. [사진 김대영]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 위스키 원조국 싸움  

하지만 스코틀랜드가 위스키 원조국이라고 하면 배 아픈 사람들이 있다. 바로 아일랜드인들이다. 아이리시 위스키가 스카치위스키보다 먼저 세상에 등장했다고 주장한다. 한국어로는 표기가 똑같지만, 스코틀랜드에서는 ‘Whisky’, 아일랜드에서는 ‘Whiskey’로 표기한다. 알파벳 ‘e’ 하나에 위스키는 두 개로 나뉜다.

실제로 현재까지 가동 중인 위스키 증류소 중 가장 오래된 증류소는 아일랜드에 있다. 1608년에 설립된 부쉬밀 증류소는 4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졌다.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오래된 보모어, 스트라스아일라,발블레어 증류소가 1700년대 말에 지어졌으니 부쉬밀 증류소를 가진 아일랜드는 자부심을 가질 만도 하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위스키 증류소, 부쉬밀의 싱글몰트 21년. [사진 김대영]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위스키 증류소, 부쉬밀의 싱글몰트 21년. [사진 김대영]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 위스키를 구분하는 알파벳 ‘e’가 생산자의 조상이 누구인지를 알려주는 역할도 한다. 미국에서 출시되는 위스키는 Whisky도 있고 Whiskey도 있는데, 어느 표기를 쓰는지에 따라 생산자의 조상이 스코틀랜드계인지 아일랜드계인지 알 수 있다.

같은 미국 위스키라도 위스키 스펠링이 다르다. 왼쪽은 Whisky 메이커스 마크, 오른쪽은 Whiskey 놉크릭. [사진 김대영]

같은 미국 위스키라도 위스키 스펠링이 다르다. 왼쪽은 Whisky 메이커스 마크, 오른쪽은 Whiskey 놉크릭. [사진 김대영]

그러나 대세는 Whisky다. 19세기 88개가 넘었던 아일랜드 정식 면허 증류소가 두 차례의 세계대전, 미국의 금주법 등의 악재를 만나 문을 닫기 시작했다. 그래서 2000년대엔 스무 개 남짓의 증류소만 남았다. 반면 스코틀랜드에는 120개가 넘는 증류소가 있다. 맥캘란, 글렌리벳, 글렌피딕같은 너무나도 유명한 증류소가 아직 건재하다. 한국에 온 아일랜드인은 스카치 캔디를 보고 왜 아이리시 캔디가 아니냐며 딴죽을 걸지 모른다.

아일랜드, 옛 위스키 영광 재현 위해 안간힘 

우리가 김치의 원조를 일본이나 중국에 빼앗기지 않으려고 하는 것처럼 아일랜드도 위스키의 영광을 되찾기 위한 노력이 한창이다. 최근 아일랜드에는 세계적인 위스키 붐에 힘입어 증류소 수십 개가 생겨났다. 아이리시 위스키 협회에 따르면 아이리시 위스키는 전 세계 브라운 스피릿 시장에서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였다.

지난해 아이리시 위스키는 14.3% 성장한 데 반해, 프랑스 꼬냑은 10% 성장에 그쳤다. 또 한 사업가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부쉬밀 증류소에서 맛이 뛰어난 위스키를 제품화하는데 성공, 아이리시 위스키의 훌륭함을 전 세계에 알리고 있다.

싱글몰트 아이리시 위스키 틸링 24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부쉬밀 증류소에서 엄선한 위스키. 특유의 열대과일 향으로 위스키 매니아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사진 김대영]

싱글몰트 아이리시 위스키 틸링 24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부쉬밀 증류소에서 엄선한 위스키. 특유의 열대과일 향으로 위스키 매니아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사진 김대영]

Whisky도 있고 Whiskey도 있다. 언젠가 Whiskee라는 별종이 나타날지도 모른다. 다양한 위스키들이 우리의 밤을 더 다채롭게 해줄 것이다. 바나 집에 있는 위스키병을 가만히 살펴보자. 간밤에 마신 위스키는 Whisky입니까, Whiskey입니까?

김대영 중앙일보 일본매체팀 대리 kim.dae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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