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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표창 뒤집는 건 안 돼” 이산가족 상봉 속 남북의 거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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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년 만에 만나 감격이 넘치는 이산가족 상봉장이었지만, 남북 간의 거리가 확인되는 순간들도 생겨났다.

북측 가족들은 북한 당국에서 받은 표창을 남측 가족에게 자랑하기 위해 가져왔는데, 이를 테이블에 꺼내놓는 과정에서 남측 지원 요원과 가벼운 실랑이가 벌어졌다.

주정례(86)씨의 북측 조카 주영애(52)씨는 김일성 표창을 받았다며 자랑했다. 남측 지원 요원은 표창장을 테이블 아래로 내릴 것을 여러 차례 권유했지만 영애씨는 “최고 존엄을 어떻게 내릴 수 있느냐”며 거부했다. 남측 지원 요원이 뒤집어 두는 것을 제안하자 “뒤집는 것은 더욱 안 된다”며 반발했다. 영애씨는 남측 취재진이 다가가자 덮개를 열어 표창을 보여주기도 했다.

남측 지원 요원이 “알겠다, 알겠다. 아까 다 봤지 않냐”며 표창 덮개를 닫을 것을 요구하자 이번에는 북측 보장성원이 “가족들이 보여주겠다는 것인데, 가만히 뒤에 계시라”고 제지했다. 이후로 주씨 가족은 표창이 놓인 상태로 계속 상봉행사를 진행했다.

제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첫날인 20일 오후 북한 금강산호텔에서 진행된 단체상봉에서 윤흥규(92)씨가 매부 정익호(80)씨와 외조카손자 김상욱(38)씨와 상봉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제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첫날인 20일 오후 북한 금강산호텔에서 진행된 단체상봉에서 윤흥규(92)씨가 매부 정익호(80)씨와 외조카손자 김상욱(38)씨와 상봉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북미 관계를 두고 남북의 가족들 간에 아찔한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차제근(84) 할아버지는 북측 조카 차성일(50)씨가 “큰아버지, 죽기 전에 고향에 한번 오라요. 통일이 빨리 와야지요”라고 하자 “그래 빨리 통일이 와야지”라고 답했다.

그러자 성일씨가 “미국 놈들을 내보내야 해. 싱가포르 회담 이행을 안 한다는 말예요”라고 미국을 비난했다. 이로 인해 두 사람 간 작은 논쟁이 벌어졌다.

차제근 할아버지는 “6‧25 난 것이 김일성이 내려와서 그렇다”고 맞섰고, 성일씨는 양손을 저으며 “그건 거짓말이라요. 6‧25는 미국놈들이 전쟁한 거예요. 우리는 우리 힘으로 싸웠습니다”라고 받아쳤다.

이날 논쟁은 차제근 할아버지가 “그래 그건 잘한 거야”라고 말하면서 웃으며 마무리됐다.

금강산=공동취재단, 이가영 기자 lee.g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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