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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사진관]사진으로 말하는 제주의 Texture...고승욱·박정근展 '무한한 대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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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찍는다. 프레이밍을 하며 생각한다. 내가 담는 대상이 어떤 의미로 전달될까? 사진으로 남긴 것들이 보는 사람에게 말을 걸 수 있을까?

고승욱_세모의 풍경-하도리-2017년-120x70cm [사진 스페이스22]

고승욱_세모의 풍경-하도리-2017년-120x70cm [사진 스페이스22]

작가 모리스 블랑쇼는 그의 책 '무한한 대화'에서 "말은 재현만이 아니라 파괴하는 역할도 한다. 말은 사라지게 만들고 대상을 부재하게 하며 소멸시킨다"며 의미 작용을 벗어난 언어가 존재하는 침묵의 장소를 찾았다. 언어가 숨기 좋은 장소. 사진은 말이 없는 이미지로 애초부터 침묵의 이미지다. 최근 제주를 기록한 '말이 없는 사진'이 담긴 전시회가 열렸다.

전시에는 제주에서 나고 자란 고승욱씨와 제주로 이주한 박정근씨가 참여한다. 10년간 제주를 기록한 두 작가는 사진을 통해 제주와 제주의 바깥에 대해 결이 다른 대화를 주고받는다. 제주 4·3 70주년을 맞아 열리는 이번 사진전의 제목은 '△, □,○... 무한한 대화'다. 사진 및 영상 40여점이 전시된다.

고승욱_말과 돌-수월봉-2015년-130x70cm [사진 스페이스22]

고승욱_말과 돌-수월봉-2015년-130x70cm [사진 스페이스22]

고승욱_돌초15 [사진 스페이스22]

고승욱_돌초15 [사진 스페이스22]

고승욱_말과 돌-황고지-2015년-11-x70cm [사진 스페이스22]

고승욱_말과 돌-황고지-2015년-11-x70cm [사진 스페이스22]

제주 토박이 고승욱은 기념할 수 없는 것들을 기념한다. 그의 작품 '△의 풍경-하도리'는 텅 비어 있는 비석을 탁본하고 탁본한 천에 이름 없는 자들의 그림자를 띄워 익명의 사람들을 호출했다. 사진 속에는 검은 산과 검푸른 하늘, 벌거벗은 사람의 몸통과 그림자, 그리고 타오르는 촛불이 있다. 사람의 얼굴은 촛불 뒤로 도망치며 그림자로 증명되고, 그림자 초상은 스크린 위로 또렷하게 떠오른다. 이 사진 속의 주체는 누구인가. 그림자인가, 몸통인가, 촛불인가, 검은 산인가. 아니면 제주도의 보이지 않는 손인가. 사진 속에 편입되지 않았지만 사진의 밖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인가. 온통 다 주체이다. 개별주체들이 모여 만들어낸 집단 제주라는 섬에 이 말더듬이 주체들은 검은 산처럼 망각의 저편에서 잠자고 있었던 기억들을 호출해 겹겹의 레이어를 만들어낸다.

박정근_물숨의결-물숨#02_2014년-150x110cm [사진 스페이스22]

박정근_물숨의결-물숨#02_2014년-150x110cm [사진 스페이스22]

박정근_물숨의결-물숨#04_2014년-150x110cm [사진 스페이스22]

박정근_물숨의결-물숨#04_2014년-150x110cm [사진 스페이스22]

제주에서 머무르는 박정근은 해녀를 찍고 4.3 유가족을 찍었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봐왔던 해녀의 모습이 아니다. 사진 속 해녀들은 수경을 쓰고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바다에 가만히 떠오른다. 아니 가라앉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박정근의 해녀 사진은 찍는 자와 찍히는 자의 관계를 무력화시키고 오직 떠오르는 얼굴만 보여준다. 고승욱의 구멍 난 사진처럼 해녀는 박정근의 사진 속에서 구멍을 만든다. 반대로 4·3 유가족들의 초상은 분명하다. 목소리도 또렷하고 그 소리를 받아 적은 글들도 잘 읽힌다. 박정근이 잘 받아썼고 탁본하듯이 얼굴을 찍어내서 모든 게 선명하다. 하지만 이들의 존재론적인 위치는 역시 구멍이다. 박정근의 초상사진은 그들을 재현하려는 것이 아닌 대상에 순수하게 도달하려 그들의 움직임이 만들어낸 ‘결’을 찍고자 한 것이 아닐까. 박정근은 무엇으로도 환원이 불가능한 해녀와 4·3 유가족의 현존에 응답하고 있다.

박정근_물숨의결_물옷#06-2014년-150x110cm [사진 스페이스22]

박정근_물숨의결_물옷#06-2014년-150x110cm [사진 스페이스22]

박정근_물숨의결_물옷#0302-2014년-150x110cm [사진 스페이스22]

박정근_물숨의결_물옷#0302-2014년-150x110cm [사진 스페이스22]

박정근_사라진 영남마을 2018-90cmx130cm [사진 스페이스22]

박정근_사라진 영남마을 2018-90cmx130cm [사진 스페이스22]

독립큐레이터이자 사진평론가 최연하씨가 기획한 이번 전시는 사진·미술 대안공간 SPACE22(서울 강남구 강남대로 390 미진프라자 22층)에서 다음 달 5일까지 관람할 수 있다. 오는 28일 오후 4시에는 작가와의 대화가 진행된다.

장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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