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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밴드가 그만 부르고 싶다는 노래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597호 34면

일러스트레이터 밥장의 통영놀이 

 며칠 전 ㄱ작가가 통영을 찾았다. 새로 나온 소설을 홍보하기 위해 통영 시민들과 만나는 자리였다. ㅈ미술관에서 열렸는데 무려 100명이 넘는 분이 ‘유료’로 찾아왔다. 서울이나 어느 정도 규모 있는 도시라면 백화점이나 기업이 운영하는 문화센터, 이른바 ‘문센’ 한두 곳은 있게 마련이다. 기업에서는 마케팅을 하기 위한 수단이지만 시민들에게는 작가나 예술가, 다양한 전문가들을 만나는 통로가 된다.

 통영은 작은 도시라 아직 ‘문센’은 없다. 지자체나 도서관에서도 행사를 마련하지만 다양한 수요를 맞추기에는 아무래도 부족하다. 그래서인지 작가들이 통영을 찾을 때마다 눈에 띄게 많은 사람이 모인다.

 본격적인 강연에 앞서 ㅇ밴드가 노래와 연주로 분위기를 띄웠다. 중간에 ‘통영 이야기’를 연주했는데, 직접 작사ㆍ작곡한 곡이었다. 통영을 기분 좋게 한 바퀴 돌아보는 듯한 가사에 멜로디도 어렵지 않아 쉽게 따라부를 수 있었다. 산전수전 다 겪은 ‘전국노래자랑’의 사회자 송해도 애먹었다는 농담을 할 만큼 리액션 없는 통영에서 가볍게 박수까지 치며 “통통통통통통통영 라라라라랄라랄라”를 부르는 모습은 조금 낯설었다. 노랫말은 이렇다.

 “아름다운 동피랑 언덕을 지나/그림 같은 이순신 공원을 걷네/달짝지근 맛 좋은 꿀빵을 손을 들고...한산도 비진도 장사도 매물도/아름다운 섬들의 노래/새콤달콤 깍두기 오징어무침 시락국에 충무김밥/힘들 때 웃자 다함께 우짜...붉게 물든 석양의 달아공원도/푸른 하늘 미륵산 케이블카도/그대 맘을 물들인 거리의 악사들도/함께해요 통영 함께해요 통영 .”  


 ㅇ밴드는 2016년 초 통영에 살며 일하는 직장인 네 명이 모여 결성했다. 처음에는 강구안에서 버스킹을 했지만 대구 포크페스티벌에서 입상을 한 뒤 입소문을 타고 진주와 창원에서도 단독공연을 했다. 지난해에는 미니 앨범을 냈으며 노래 ‘통영 이야기’도 실려있다. 여수에는 ‘여수 밤바다’, 부산에는 ‘부산 갈매기’, 안동에는 ‘안동역에서’, 춘천에는 ‘춘천 가는 기차’가 있듯이 통영에는 ‘통영이야기’가 있다’라고 순진하지만(?) 당당하고 소개했다.

 지역에서 탄생하다 보니 통영에서 열리는 행사나 축제에는 단골로 초대된다. 멤버들도 돈이나 다른 조건보다는 통영 사람, 통영 밴드란 자부심으로 공연에 나선 듯하다. 그런데 최근 한 멤버가 SNS에 남긴 글을 우연히 읽었는데,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통영 이야기를 부르면 다른 지역에서는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데 왜 여기서는 찬밥일까. 다른 지역에서는 지역 뮤지션을 해외까지 보내면서 홍보에 활용한다는데 왜 여기서는 동네 잔챙이로 여길까 이제 더 이상 이 노래를 부르고 싶지 않아. 이제 그만 이용당할래.”  


 통영 앞에는 언제나 ‘문화 예술의 도시’가 붙는다. 박경리가 소설을 쓰고, 김춘수가 동네를 거닐며, 이중섭이 다방에서 개인전을 열고, 유치환이 우체국에서 편지를 부치고, 김상옥이 순애보를 남기고, 윤이상이 중고등학교 교가를 지었던 시절엔 분명 그랬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 통영은 온도 차가 느껴질 만큼 다르다. 지금 여기에 살며 활동하는 작가들이 힘들어 하고 떠나고 싶어하는 만큼 거리에 붙어있는 통영을 빛낸 작가들 사진도 누렇게 바래간다. 문화도, 예술도 창작자들이 생활할 수 있어야 지속가능하다. 문화 예술의 도시‘였었던’ 통영이 될까 봐 조금은 두렵다.

작가ㆍ일러스트레이터ㆍ여행가. 회사원을 때려치우고 그림으로 먹고산 지 10년이 훌쩍 넘었다. 『호주 40일』『밤의 인문학』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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