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제40기KT배왕위전 :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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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제40기KT배왕위전'

<16강전 하이라이트>
○ . 최철한 9단 ● . 진시영 초단

부드러움이 중요하다. 바둑이든 스포츠든 힘이 들어가면 빗나간다. 젊은 시절의 조훈현 9단은 최고의 부드러움을 보여줬다. 강철같은 단단함도 그의 탄력 넘치는 부드러움 앞에서 사족을 쓰지 못했다. 그렇다. 부드러움은 심신의 밸런스를 잡아주고 강함은 심신의 밸런스를 무너뜨린다. 그러나 그것은 이론일 뿐 나도 모르는 사이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어쩌랴.

장면도=판을 살피면 하변이 급해 보인다. 흑?와 백?들은 흩어져있어 먼저 공격하는 쪽이 하변을 장악하게 된다. 그러나 최철한 9단은 34로 우변 흑진을 파고든다. 악전고투를 즐기는 최철한다운 발상이다.

17세 진시영은 아까부터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가 있다. 상대가 그토록 만나고 싶었던 절세고수이기에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는 것이다. 그는 34를 보자 35로 힘차게 호구한다. 그러나 이 수는 힘만 썼을 뿐 초점이 빗나갔다. 35는 A로 부드럽게 진출하며 34쪽을 압박하는 게 좋았다. 여기서 35를 맥 풀리게 만드는 백의 한 수가 등장한다.

참고도(실전)=백1의 치중수가 날카롭게 파고든다. 이 한 수에 진시영은 명치를 얻어맞은 사람처럼 숨이 막혀온다. 잇는 것은 너무 우형이라 도저히 둘 수 없다. 기세는 무조건 흑2로 막는 것이다. 하지만 3으로 젖혀 잇고 7로 뚝 끊으니 백의 실리가 오동통하다. 잔뜩 노려보며 힘을 썼지만 상대는 손가락 사이의 물처럼 빠져나가고 있다.

8은 생략할 수 없는 수. 여기서 9로 두어 A와 B를 맞보는 최철한의 감각이 보드랍다. 신진 강호를 앞에 두고 한 수 지도하고 있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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