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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 독특한 소재와 치밀한 구성 … 당신도 미국 드라마 중독자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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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지나 데이비스가 미국의 여성대통령으로 분한 ‘미세즈 프레지던트’

'프렌즈' '섹스 앤 더 시티' 그 후 …

‘6백만불의 사나이’‘원더우먼’‘맥가이버’‘A특공대’‘전격 Z작전’등 미국 드라마에 열광했던 시절이 있었다. 브라운관에 가득 펼쳐진 환상의 세계는 1970~80년대 서민들의 고단한 일상에 청량제 같은 볼거리였다. 황당한 스토리지만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는 공식은 수많은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20여년이 흐른 지금, 미국 드라마가 다시 인기다. 화제의 중심에 국내 드라마 대신 미국 드라마가 올라오고, 미국 드라마에 비친 라이프스타일을 추종하는 젊은이도 늘고 있다. ‘프렌즈’같은 쿨한 우정을 꿈꾸고, ‘섹스 앤 더 시티’에서 패션감각을 배우며, ‘CSI(과학수사대)’의 과학적 논리에 감탄하는 미국드라마 매니어를 주위에서 찾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미국 드라마의 '공습'=현재 지상파 TV, 케이블 TV, 위성채널, DMB 등을 통해 방송되는 미국 드라마는 30편이 넘는다. 드라마 편수와 시청률 면에서 미국 드라마를 국내 드라마에 비교하는 것은 어렵지만 두터운 매니어층과 파급력을 볼 때 미국 드라마는 지금 한국을 '공습'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바닥까지 떨어진 최고 요리사가 재기하려 애쓰는 과정을 그린 ‘키친 컨피덴셜’

2001년 국내에 첫 상륙한 'CSI'의 경우 현재 시즌 6까지 방영되며 장수 드라마로 자리 잡았다. 케이블 영화채널 OCN에서의 최고 시청률 4%대로 웬만한 블록버스터 영화를 능가한다. 워낙 인기가 높다 보니 'CSI 마이애미 시즌 4'의 경우 미국에서 종영이 되기 전에 OCN을 통해 방송된다. CSI 신드롬은 드라마 동호회의 규모로도 확인된다. 네이트닷컴 등 포털사이트에서 활동하는 회원 수는 10만 명을 넘는다.

이 같은 미국 드라마 붐은 1996년 케이블채널 동아TV에서 시트콤 '프렌즈'가 주목받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이후 '섹스 앤 더 시티'와 'CSI'등이 잇따라 히트하면서 미국 드라마는 하나의 대중적 장르로 자리매김했다.

최근에는 미국의 인기 드라마가 국내에서도 거의 동시에 인기를 끄는 추세다. 미국의 닐슨 미디어리서치가 발표한 4월 17일부터 23일까지 미국 주간 TV시청률 순위를 살펴보면 '하우스 시즌2''CSI''위기의 주부들''그레이 아나토미''크리미널 마인드' 등 상위 20위 프로그램 대부분이 국내에서도 인기를 얻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온미디어 이영균 팀장은 "시청률 높은 미국 드라마가 국내에서 인기를 끄는 것은 미국 시청자들과 국내 시청자들의 취향이 점차 비슷해지고 있다는 증거"라고 분석했다.

최첨단 현대과학의 힘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과학수사대의 활약을 그린 ‘CSI’

이에 따라 현지에서 방영 중인 미국 드라마를 미리 구매하려는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예전에는 드라마가 종영된 뒤 현지 반응 등을 살펴 구매를 결정했지만, 요즘은 방송되기도 전에 샘플만을 본 뒤 구매하는 경우도 있다. 케이블 채널과 DMB 등 매체의 증가로 미국 드라마 수입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나타나는 입도선매 현상이다.

케이블 업계 관계자는 "미국에서 방영 중인 드라마는 이미 구매가 결정돼 있는 상태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케이블 TV를 중심으로 미국 드라마의 인기가 치솟으면서 지상파 TV도 미국 드라마 구매 경쟁에 가세한 상태다.

◆"왜 보냐고? 재미있으니까!"=사람들은 왜 미국 드라마에 열광할까. 일단 재미있기 때문이라는 얘기가 많다. 미국드라마 동호회 회원인 문모(31.회사원)씨는 "미국 드라마에 중독된 다음부터는 웬만한 지상파 TV의 오락 프로그램이나 드라마는 거들떠 보지도 않게 됐다"고 말했다.

OCN 박선진 팀장은 "요즘 미국 드라마는 예전의 가족드라마나 액션물과는 차원이 다르다"며 "재미있는 스토리와 독특한 캐릭터, 다양한 장르, 치밀한 구성을 갖춰 할리우드 영화 이상의 장악력을 갖춰가고 있다"고 말했다.

주부들의 적나라한 가정사를 경쾌한 미스터리 기법으로 풀어낸 ‘위기의 주부들’

영화 '진주만''더 록' 등을 연출했던 제리 브룩하이머가 드라마 제작에 뛰어드는 등 드라마 제작인력의 수준과 제작 비용이 높아지면서 영화에 버금가는 수준의 드라마가 양산되기 시작한 것도 무시 못 할 요인이다. 같은 범죄수사물이라도 다양한 변종 시리즈를 만들어 내고, SF 미스터리는 물론 게이.레즈비언 등 마이너리티의 일상까지 담아내는 등 드라마 영역을 끊임없이 확장해가는 것도 미국 드라마의 경쟁력이다. 국내 지상파의 신파 위주 드라마 또한 시청자의 채널을 돌리게 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이 같은 미국 드라마의 인기에는 미국 드라마 매니어들의 역할이 적지 않다. 이들은 현지에서 방영 중인 드라마를 동영상 파일로 내려받아 이를 회원들과 공유한다. 또 미니홈피나 블로그 등을 통해 최신 정보를 퍼뜨린다. 입소문의 진원지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들의 정보력은 업계 전문가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다. 미국 드라마 사이트 회원인 남모(30)씨는 "자막도 회원들끼리 수차례 수정을 거쳐 완벽하게 만들어낸다"고 말했다. 심지어 이들을 단순히 '미국 드라마 매니어'라고 표현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시각도 있다. 장르가 워낙 다양한 만큼 드라마별로 매니어가 형성돼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입소문으로 화제가 된 미국 드라마를 케이블TV.지상파 TV 등이 방영하면서 또다시 대중적인 인기를 끌게 되는 것이 일반적인 미국드라마 소비 패턴이다.

이 같은 미국 드라마의 인기는 당분간 계속될 것이란 게 업계의 분석이다. CJ미디어의 손승애 팀장은 "전 세계 배급을 목표로 해서인지 요즘 미국 드라마에선 '록키''람보'류의 미국적 가치를 담은 작품이나 지나치게 폭력적인 작품을 찾기 힘들다"고 말했다. 손 팀장은 "탄탄한 구성의 드라마가 해외에 잘 팔리고, 그 수입으로 제작비를 투입해 더욱 중독성 있는 시즌 2를 만드는 선순환 구조가 작동하는 한 미국 드라마의 경쟁력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현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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