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뚜껑 열리게 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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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남중수 KT 사장이 9일 서울 용산의 KT 콜센터(왼쪽)와 서울 구의동의 한 생맥주집에서 직원들을 만나고 있다.


"CEO(최고경영자)는 시(視).이(耳).오(娛)를 하는 사람이다."

KT 남중수(51) 사장의 최고경영자론이다. 즉 고객 관점에서 현장을 보고(視), 고객의 소리를 듣고(耳), 고객과 직원에 즐거움(娛)을 주는 사람이 CEO란 것이다. 그래서 그는 '현장(賢將)'이 되길 원한다. '현명한 장수'이면서 고객이 있는 현장(現場)을 지키는 장수가 되겠다는 것이다.

남 사장은 올해 들어 30여 차례 현장을 방문했다. 잠깐 다녀오는 식의 방문이 아니다. 하루 종일 지사와 지점.협력업체.고객을 방문하는 식으로 현장을 찾았다. 9일에도 남 사장은 오전 9시부터 밤 10시까지 현장을 누볐다. 아침 9시 맨 먼저 찾은 곳은 서울 용산에 있는 KT 콜센터. 그는 각 층을 돌면서 직원과 일일이 악수하면서 눈을 맞췄다. 7개 층을 돌면서 문이란 문은 모두 열어봤다. 그는 "한 명의 직원이라도 못 만나고 가는 일이 없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원효로 지사를 찾았다. 초고속 인터넷 영업사원들과 대화를 나누는 자리에서 그는 "나를 뚜껑 열리게 하라"며 말문을 열었다. 지난해 입사한 장대성(31)씨가 "새로운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의 이름을 본사에서 지어 내려보냈는데,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자, 남 사장은 "누가 내려보내고 누가 올려보내느냐"며 반박했다. 그는 '내려보낸다'는 말에서 권위주의가 느껴지므로 앞으로는 본사와 지사가 의논해서 좋은 결정을 하자고 제안했다.

사장과의 대화 도중 고객과 약속이 있는 4~5명의 직원이 자리를 떴다. 그는 개의치 않았다. 실제 지난달 말 그가 동해지사를 방문했을 때, 지사장은 선약을 이유로 자리를 비웠다. 남 사장은 전 직원에 보낸 이메일에서 "사장보다 고객을 더 배려한 동해지사장의 판단이 옳았다"고 칭찬했다.

이어 오후 1시30분께, 남 사장은 KT의 여성 서비스 직원과 함께 서울 마포의 고객 집을 방문했다. 초고속 인터넷에 TV를 연결해 주문형 비디오(VOD)와 TV방송, 생활 정보 등을 사용할 수 있는 서비스를 개통하기 위해서였다. 문을 열어준 고객의 표정은 화가 나 있었다. 이에 앞서 두 차례 개통에 실패했기 때문이었다. 고객은 남 사장에게 "이럴 줄 알았으면 애당초 서비스를 신청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쏘아붙였다. 설치 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남 사장은 1시간 가량 초조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문제가 해결되자 남 사장은 "서비스가 미숙했다"며 고객에게 머리 숙여 사과했다.

그는 KT 광진지사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한 때 세계 최대 통신회사였던 미국 AT&T가 몰락한 것은 현장에서 멀어졌기 때문"이라며 "KT도 고객의 목소리와 현장을 외면하면 AT&T와 같은 운명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토로했다.

이희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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