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수준, 정치의 수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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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치는 이제 국민 앞에 벗겨져 있다. 지난번 국회청문회가 보여 주었듯이 국민은 정치인들의 거동과 말투에 직접 부닥치고 있다.
정치는 이제 정치인끼리, 밀폐된 곳에서 은밀히 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이제부터의 정치는 어떠해야 하는가.
5공화국때 흔히 하는 말로 각분야의 수준에서 정치수준이 가장 낮다는 얘기들을 했다. 국민의식이 가장 높고 경제분야가 그 다음이며 밑에서 치면 정치가 바닥이고 그위로 관료냐, 사법이냐, 언론이냐, 교육계냐하는 논의가 분분했다.
과학적인 조사와 근거를 가지고하는 얘기는 아니었지만 정치가 국민의 의식수준을 따라가지 못하고있다는 점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었다.
6공화국은 새헌법 새선거에 의해 출범했고, 민주화를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과거를 청산하고 새정치를 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근래의 정치 형국을 보면 새 정치를 위한 자세에 미흡함이 있다.
정당은 정책을 결정하고 이 정책을 전 국민이 받아들이도록 설득하여 실천해 나가는 것을 기본 임무로한다.
지금 우리 정당들은 우리 사회의 최대 현안인 전두환씨 처리 문제에 대해 이같은 임무수행을 위한 기본자세가 되어있는 것일까.
우리는 전씨문제가 흥정거리가 아니라고 지적한바 있다. 그러나 여당측과 연희동측의 움직임, 그리고 해결책에 관한 야당측의 입장은 어떠한가.
누구는 공치자금을 비롯한 몇가지 막후사실의 발설을 숨겨진 카드로 가진듯이 말하는가 하면 누구는 재산헌납의 액수를 가지고 논의를 하고 있다고 들린다.
할말이 있으면 해야할 것이다. 할말있는듯이 얘기해놓고 말하지 않는다면 「벗겨진 정치」에 또하나의 의혹만 국민에게 남긴다. 액수도 마찬가지다. 많고 적음에 무슨 문제가 있을 까닭이 없다. 있는 그대로면 되는 것이다.
야당의 입장에도 석연치 않은 면이 없지 않다. 어느 당의 경우는 전씨가 성의있는 조치를 취하면 더이상 사법적 처리를 묻지 않아도 좋을 것이라는 점, 우리국민이 물러난 이승만박사를 용서했듯이 전두환씨에 대해서도 관용을 베풀 것으로 믿고 용서하려하지 않는 국민이 있다면 정부와 야당이 합심하여 설득하자는 입장을 명백히 했다.
또 어느 당은 진실을 밝히기 위해 일단 수사까지는 하되 사법적 처리여부는 추후로 미루고 있다.
또 다른 당은 『진상규명, 재산반환등의 조치가 선행되면 사법적 조사는 진행하되 전씨 본인의 신체적 구속엔 반대한다』고 했다가 다음날 『현 단계에서 전씨의 구속을 원치 않다는 것이 아니다』고 당의 입장을 바꾸었다.
정치는 꿍꿍이로 되는것이 아니며 이랬다저랬다하는 말의 기교로 되어서도 안된다.
정치는 공명정대해야한다. 끼리끼리의 정치는 환영받지 못한다.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눈치를 살피는 정치는 구시대적 정치다. 국민앞에 벗겨진 정치에 맞는 정치가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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