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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김기춘, 2013년 일제 징용사건 재판 앞두고 대법관 불러 논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6면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2013년 재임 당시 일제 징용 사건 재판과 관련해 현직 대법관을 자신의 공관으로 불러 박근혜 대통령의 요구 사항을 전달한 정황을 검찰이 포착했다. 검찰은 외교부 기록과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에 대한 소환 조사에서 이같은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박근혜 전 대통령 요구 전달한 정황 #대법관은 차한성 당시 행정처장인 듯

검찰 관계자는 14일 “2013년 말 김기춘 당시 비서실장이 서울 삼청동 공관으로 윤병세 당시 외교부 장관과 법원을 대표하는 위치의 대법관을 불러 일제 징용 사건 재판과 관련한 논의를 한 증거를 확보했다”고 말했다. 대법원장을 제외하고, 법원을 대표할 위치의 대법관은 법원행정처장이다. 당시 처장은 차한성 대법관이다.

일제 징용 사건은 일제강점기 강제노역 피해자들이 일본 전범 기업들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일이다. 검찰 관계자는 “사인(私人) 간의 재판에 청와대가 개입한 것은 행정부가 사법부의 고유 권한을 침해한 중대 불법 행위”라고 설명했다.

김 전 실장은 ‘한·일의 우호적 관계’를 중시하는 청와대의 입장을 전하며 일제 징용 소송을 ‘대법원 전원합의체로 넘길 것’을 요구한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삼청동 공관 출입 내용은 검찰이 압수수색으로 확보한 외교부 문서 등을 통해 확인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관계자는 “13일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을 조사했으며 당시 외교부 관계자들도 소환 조사했다”면서 “공관 출입 내역에 대한 기록이 있는 만큼 김 전 실장도 이러한 사실을 부인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2012년 5월 대법원은 “일제 징용 생존자에 대한 일본 기업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취지로 다시 재판하라”며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이듬해 사건은 이런 결정에 맞게 수정돼 대법원으로 돌아왔지만, 이후 5년 동안 대법원은 최종 판결을 내리지 않았다. 그동안 소송을 낸 고령의 강제 징용 피해자 9명 중 7명이 세상을 떠났다. 대법원은 다음주 중 강제 징용 사건에 대한 전원합의체 심리에 들어갈 계획이다.

조소희 기자 jo.so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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