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판화로 보니 그 눈빛 생생하네, 안중근 의거

중앙일보

입력

원수를 바라보는 안중근(1879~1910) 의사의 눈매는 매서운 결기로 이글거린다. 땅에 떨어진 권총에서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아직 목숨이 끊어지지 않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는 비틀거리며 자신을 쏜 청년을 바라본다. 1909년 12월 1일 일본 도쿄 박화관(博畵館)에서 발행한 석판화 ‘이토공조난지도(伊藤公遭難之圖)’는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사건을 다룬 ‘보도(報道) 판화’다. 한 달 여 전인 10월 26일 하얼빈 역에서 벌어졌던 역사적 사실을 한 장의 그림으로 응축했다. 마침 내년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과 공동사업으로 안중근 의사 유해 발굴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참이라 더 우리 시선을 끈다.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 현장을 묘사한 석판화. 1909.12 도쿄 박화관발행 [사진 고판화박물관]]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 현장을 묘사한 석판화. 1909.12 도쿄 박화관발행 [사진 고판화박물관]]

이 석판화는 18일부터 강원도 원주 치악산 명주사 고판화박물관(관장 한선학)에서 열리는 ‘판화로 보는 근대 한국-사건 & 풍경’에 선보인다. 2003년 문을 연 고판화 박물관의 15주년 특별전으로 우리 근대사를 되짚어볼 수 있는 판화 60여 점이 관람객을 맞는다.
이번 전시에서 안중근 의사의 저격 보도 판화 외에 눈길을 끄는 작품은 동학 태극기 목판화와 ‘세계 십 제왕 어존영’ 석판화다.

동학 지도자 오지영의 이름이 새겨진 동학 태극기 목판. 괴목으로 만들었다.     [사진 고판화박물관]

동학 지도자 오지영의 이름이 새겨진 동학 태극기 목판. 괴목으로 만들었다. [사진 고판화박물관]

동학 태극기는 1894년 동학농민운동에 직접 참여해 양호도찰이라는 동학의 지도자 구실을 했던 오지영(?~1950)의 이름이 새겨진 괴목 목판으로 찍어냈다. 남접과 북접 간의 대립관계를 조정하는 임무를 맡았던 오지영은 1940년 『동학사』를 간행하는 등 동학을 항일구국투쟁이라는 명분과 기치 아래 모이게 한 중심인물이었다. 자신의 역할에 걸맞게 태극기를 찍어낼 수 있는 목판화를 소유했던 증거인 셈이다.

일본의 제국주의를 드러낸 '세계 십제왕 어존영' 석판화.                [사진 고판화박물관]

일본의 제국주의를 드러낸 '세계 십제왕 어존영' 석판화. [사진 고판화박물관]

‘세계 십 제왕…’은 1897년 석판화로 일본의 제국주의 야욕을 엿볼 수 있는 석판화다. 열 명의 제왕을 그린 집단 초상화인데 앞줄 중앙에 일본 천황과 러시아 황제를 그리고 뒷줄 왼쪽 맨 끝에 청나라 황제를, 오른쪽 맨 끝에 고종을 배치함으로써 권력의 위상을 서열지어 놓았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고종의 초상은 심약해보이기까지 한다.
한선학 관장은 “시대적 난관을 극복하는 지혜이자 남북이 분단의 아픔을 씻는 계기로 활용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전시를 기획했다”고 밝혔다. 전시는 9월 23일까지. 특별전 기간 동안 1박2일 과정의 문화형 템플 스테이 프로그램이 열린다.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