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9월 평양 남북 정상회담과 문 대통령의 무거운 어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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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남북은 어제 열린 고위급회담에서 3차 정상회담 날짜를 잡진 못했지만 9월 내 평양에서 열기로 뜻을 모았다. 정부가 원했던 ‘8월 말~9월 초’는 아니지만 ‘9월’이라는 구체적 시한에 합의한 것은 의미가 있다. 청와대 측은 이와 관련해 9월 11일 이후에 열릴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북한 정권수립기념일인 9·9절 직전에 정상회담을 열면 김정은 정권의 체제 선전에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8월 말은 무산됐지만 구체적 일정 잡혀 다행 #서둘지 말고 끈기 있게 북·미 중재 역할 해야

지난 4월 27일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판문점 1차 정상회담에서는 문 대통령이 올해 가을 평양에 가기로 합의됐었다. 이번 고위급회담을 통해 3차 회담의 날짜가 ‘가을’에서 ‘9월’로 좁혀졌지만 당초 기대에 못 미친 것은 사실이다. 이번에 정상회담의 구체적 시기와 장소, 그리고 방북단 규모 등이 합의될 것으로 기대됐기 때문이다. 청와대 김의겸 대변인도 고위급회담 전날인 12일 “합의를 기대한다”는 자신의 언급에 대해 “근거 없이 말하는 게 아니다”고 덧붙인 바 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달랐다. 정황상 북한이 막판에 틀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양쪽 간 불협화음은 어느 정도 예견됐던 일이다. 고위급회담 참석자 면면을 보면 북측 대표단에는 철도·도로 경협 관계자가 많았다. 반면 남측은 통일부 차관과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 등으로 대표단을 꾸려 정상회담 협의에 무게를 뒀다. 서로 딴 뜻을 품고 나온 셈이다.

하지만 이번 회담 결과가 기대에 못 미쳤다고 낙담할 필요는 없다. 비핵화와 같은 민감한 사안이 쉽게만 풀릴 것으로 바라는 것 자체가 무리다. 협상에 나오는 어떤 대표든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때로는 지연 작전도 쓰기 마련이다. 그러니 정부는 끈기 있게 북한과의 협상을 추진해야 한다. 이번 회담의 북측 대표인 이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장도 기대에 못 미친 회담 결과가 부담된 듯 “(정상회담) 날짜는 다 돼 있다”고 말했다. 우리 대표단도 조급해 말고 의연하게 나가는 게 협상 전략상 훨씬 유리하다.

현재 북·미는 싱가포르 정상회담 이후 한 치의 양보 없이 대치 중이다. 북측은 실질적 비핵화는 미룬 채 ‘종전선언’과 남북 경제협력 확대만 재촉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비핵화 조치 없이는 종전선언도, 제재 해제도 없다”며 선을 긋고 있다. 이 와중에 북은 우리를 향해 “미국의 제재책동에 편승하지 말라”고 불만을 쏟아내며 개성공단 및 금강산관광 재개를 압박하고 있다.

이런 교착 상태를 뚫으려면 남·북·미가 모두 한 발씩 양보할 수밖에 없다. 현재 북·미 간 타협을 끌어낼 수 있는 건 바로 우리다. 결국 3차 남북 정상회담을 위해 다음달 평양을 향할 문재인 대통령의 어깨에는 북·미 간 불신 해소와 비핵화를 전제한 종전선언 등 무거운 과제들을 짊어질 수밖에 없다. 한·미 공조를 튼튼히 다지면서 지나치게 남북 교류를 서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북·미 사이에서 우리가 해야 할 중재 역할을 정확히 파악하고 신중히 추진하는 게 우리로서는 최선의 방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