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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동 걸기 두렵다” “차라리 전철” … BMW발 ‘카 포비아’ 확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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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직장인 박정은(38)씨 가족은 이달 초 시댁이 있는 전북 전주시에 KTX를 타고 갔다. 어린 딸(7세)도 있어 항상 자가용을 몰고 다녀왔던 곳이다. 하지만 요즘엔 한 시간 넘는 ‘장거리 운전’은 거의 하지 않는다. 아침에는 한낮 최고 기온을 확인하는 게 습관이 됐다. 37도 이상이면 차를 아예 집에 두고 나간다. 번거로워도 지하철을 탄다. 그의 집은 야외 주차장만 있는 아파트여서 그늘에 세우려고 주차장을 빙빙 돌 때도 있다. 박씨는 “폭염 때문에 엔진이 과열돼 불이 나는 상상을 하곤 한다”면서 “지하 주차장이 있는 아파트로 이사를 가야 하는 건 아닌지 고민까지 든다”고 말했다.

지난 13일 오후 BMW 차량에서 또 불이 났다. 이 차는 경기도 남양주시 양양고속도로 양양 방향 화도IC 인근에서 도로를 달리던 중이었다. [사진 독자]

지난 13일 오후 BMW 차량에서 또 불이 났다. 이 차는 경기도 남양주시 양양고속도로 양양 방향 화도IC 인근에서 도로를 달리던 중이었다. [사진 독자]

운전자들 사이에 ‘카 포비아(Car phobia·차 공포증)’가 퍼지고 있다. 차량 화재 사고가 잇따르면서다. 일부 운전자들은 “차 시동 걸기가 겁난다”고 호소한다. 소셜 미디어에는 “(차량 화재가) 폭염 때문이다”는 미확인 추측부터 “한 아이가 BMW를 보고 ‘불자동차 무섭다’며 울었다”는 목격담까지 올라오고 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소방청에 따르면 차량 화재 건수는 올 상반기(1~6월) 2501건에 이른다. 지난달 1일부터 이달 12일까지 635건이다. 방화, 교통사고, 운전자 부주의 등(635건 중 약 155건) 운전자가 일으킨 원인보다 전기·기계·화학적 원인 등(약 380건) 차량 자체 결함으로 의심되는 화재사고가 더 많다. 기온이 40도에 육박하는 기록적인 폭염이 화재를 유발했다는 시각도 있지만, 차량 화재는 여름보다 봄철에 더 자주 발생한다. 소방청에 따르면 지난해 월별 차량 화재 발생 건수는 5월(474건)·4월(451건)이 8월(430건)·7월(426건)보다 많았다.

차량 화재 40일간 635건, 불안 커져 #수입차주들 “눈치 보여 두고 다녀” #더위 탓일까봐 그늘에 주차 경쟁도

수입차 운전자들의 불안감은 더욱 크다. 국산차보다 수입차가, 브랜드 중에선 BMW의 화재 발생 빈도가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소방청에 접수된 화재사고 결과를 살펴보면 올 6월 말 기준 수입차의 1만대 당 화재사고 발생 빈도는 1.4대로 국산차(1대)보다 많았다. 수입차 가운데선 BMW가 1.5대로 상대적으로 높은 화재 발생률을 보였다.

서울 서초구 양재동 한 아파트에서는 지하주차장에 BMW 차량의 주차를 막고 있다. [사진 중앙일보 독자]

서울 서초구 양재동 한 아파트에서는 지하주차장에 BMW 차량의 주차를 막고 있다. [사진 중앙일보 독자]

자동차 온라인 커뮤니티들에는 BMW 차주들이 “무서워서 차를 못 끌고 다니겠다” “불이 안나길 바라면서 운전을 해야 하는게 너무 화가난다”는 글들을 올리고 있다. 일부 주차타워와 아파트에선 BMW 차량의 주차를 제한하는 안내문도 붙었다. BMW 차주 이모(41)씨는 “운전대를 잡으면 모든 사람들이 나만 쳐다보는 것 같아 눈치 보인다”고 말했다. 또 다른 수입차주 이재길(42)씨는 “운전할 때 차 보닛에서 연기가 나진 않는지 확인하는 일종의 강박증이 생겼다”면서 “걱정이 돼서 최근 차 점검도 받았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기계식 주차장에 BMW 승용차는 주차를 금지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사진 독자]

서울의 한 기계식 주차장에 BMW 승용차는 주차를 금지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사진 독자]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국민의 막연한 불안감을 불식시키기 위해선 사고 원인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밝혀내고,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차량 화재는 타는 냄새 등의 전조 증상이 있다. 이럴 경우엔 차를 안전한 갓길에 세운 후 원인을 파악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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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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