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방독면 40만개 이상 불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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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보급한 국민방독면 가운데 41만여개가 화재 등 재난 상황에서 무용지물인 것으로 밝혀졌다.

소방방재청은 8일 "지금까지 보급된 국민방독면에 대한 표본 조사 결과 2002년 9월까지 생산된 41만3617개의 화재용 정화통이 불량인 것으로 판명됐다"고 밝혔다.

제대로 된 방독면은 일산화탄소의 농도가 2500ppm상태에서 3분이 지난 뒤에는 350ppm 이하로 떨어져야 한다. 그러나 소방방재청이 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 의뢰해 성능을 시험해 본 결과 문제의 방독면들은 최고 1000ppm 이상의 일산화탄소가 검출되는 등 제대로 걸러주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의 방독면은 모두 ㈜삼공에서 만든 제품이다.

소방방재청은 불량 판정된 방독면의 화재용 정화통을 폐기하거나 반품하고 대신 화생방용 정화통을 끼워 전시 대비용으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대안을 밝혔다. 문제가 발생한 방독면은 개당 가격이 3만2900원으로 모두 136억원의 예산이 쓸모없이 낭비된 셈이다.

소방방재청 관계자는 불량이 발생한 원인에 대해 "자체 검사장비가 없어 원인 파악이 어려우며 조달청에 의뢰해 납품받았기 때문에 불량 발생 원인은 조달청에서 조사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조사 결과에 따라 리콜을 받든지,예산환수를 하든지 결정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민방독면의 불량 가능성에 대한 문제제기는 이미 여러차례 있었다. 특히 2003년 말 경찰청 수사 결과 생산회사가 검사기기를 조작해 성능이 떨어지는 제품을 만든 뒤 소방방재청 직원에게 돈을 주고 눈감아 줄 것을 부탁한 사실이 적발되기도 했다. 당시 소방방재청은 자체 감사를 벌여 성능시험까지 했지만 아무런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검사를 맡은 직원이 이미 보급된 방독면을 수거해 조사하지 않고 생산회사에 보관중이던 정규 규격 제품을 받아와 조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방방재청 측은 "자체 조사 당시 로비는 없었던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정부는 전쟁과 재난에 대비해 국민들에게 개인 방독면을 지급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모두 1600억원의 예산을 들여 1998년부터 2007년까지 10년간 2253만개의 방독면을 연차적으로 보급하는 국민방독면사업을 추진했었다.2001년부터 2004년까지 100만여개의 방독면을 지급했으나 실효성과 효능 문제가 제기되자 예산 배정이 끊기며 2004년 이후에는 전혀 보급되지 않고 있다. 2004년까지 보급된 방독면은 민방위 대원에게 개별 지급하거나 민방위 지역 본부에서 보관중이다.

최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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