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 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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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자정에서 4분이 지났을 때 엘리제궁의 전화벨이 울렸다. 1969년 4월 28일. 대통령 비서실장「트리코」가 수화기를 들었다. 『나는 공화국 대통령으로서 기능을 정지하네. 오늘 정오부터 발효야.』 묵직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드골」이었다. 그는 파리에서 2백40km 떨어진 고향 콜롱베레 되제글리즈에서 전화를 걸어온 것이다. 그 시간은 국민 투표의 최종 공식집계가 끝나기 30분전이었다. 52%의 농(아니오)을 확인할 필요도 없이 그는 이미 파리를 떠나 낙향해 있었다.
10년 3개월 20일의 독재 아닌 독재를 해온 지도자. 권좌에서 물러나는 대통령치고는 이삿짐이 너무 허술했다. 2대의 리무진에 실을 수 있는 서류뭉치가 전부였다.
「드골」은 귀향하고 나선 꿈쩍도 하지 않았다. 때때로 부인과 손잡고 산책하는 사진이 기군들 카메라에 찍힐 뿐이었다. 『만년을 저렇게만 보낼 수 있어도….』
실각한 「드골」을 두고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도리어 그는 사람들로부터 더 많은 존경과 선망을 받았다.
그가 만일 권세 좋은 시절, 경호실장을 시켜 6백수십억원의 기금을 끌어 모아 파리 교외 풍광 좋은 자리에 무슨 연구소 간판을 내걸고 그 안에 호화에 극치를 더한 대궐을 짓고 그리로 은퇴했다면 하루아침에 위대한 지도자는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눈을 감고 나서도 63달러 짜리 참나무 관에 누워 불과 1평 크기의 마을 공동묘지에 묻혔다. 그후 18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그가 어디에 무슨 재산을 감췄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그는 너무도 평범한 시민이었다.
「카터」도 퇴임하고 나서 고향 플레인스로 돌아갔다. 그의 유일한 재산이던 땅콩 밭은 이미 동생의 관리부실로 망하고 난 뒤였다. 「카터」는 그 촌에서 나무 조각을 모아 의자를 짜서 뉴욕으로 실어 보낸 일이 있었다. 자선바자의 상품으로 내놓은 것이다. 미국 사람들은 별것도 아닌 그 의자를 좋아라 하고 사준다.
우리 귀엔 모두가 동화 같은 얘기다. 이런 동화 같은 일이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날이 와야 우리도 민주국가라고 떵떵거릴 수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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