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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도만 더 오르면 떼죽음… 폭염 양식장의 5분 대기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르포]"하루하루가 전쟁”… 폭염과 싸우는 천수만 양식장 가보니 

지난 2일 낮 12시30분 충남 서산시 부석면 창리 앞바다 가두리양식장. 깊은 수심에서 바닷물을 끌어올리는 모터가 ‘앵~~’ 하는 소리를 내며 작동했다. 바다 아래쪽의 시원한 물을 순환시켜 물고기가 숨을 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장비다.

충남 천수만 유역 128개 어가에서 4600만 마리 양식중 #수온 낮은 깊은 바닷물 끌어올려 차광막으로 햇빛 차단 #어민들 "자식같은 물고기 지키느라 하루하루 전쟁 치러" #조류흐름 느린 조금 때가 위험, 전문가 "18일까지 고비"

액화산소공급장치로 산소를 공급했지만, 고수온 탓에 조피볼락(우럭)과 숭어는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았다. 양식장의 물고기는 인기척이 나면 먹이를 주는 것으로 알고 수면위로 머리를 내밀지만 이날은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지난 2일 충남 서산 부석면 창리 천수만 가두리양식장에서 서해수산연구소 이경미 박사(오른쪽)가 수온과 용존산소량을 확인하고 있다. 신진호 기자

지난 2일 충남 서산 부석면 창리 천수만 가두리양식장에서 서해수산연구소 이경미 박사(오른쪽)가 수온과 용존산소량을 확인하고 있다. 신진호 기자

가두리 사이로 짙은 녹색의 남조류와 부유물이 둥둥 떠다녔다. 바닷물이 올라가면 생기는 종류로 조류의 흐름을 막고 물고기의 생존을 위협한다고 한다. 어민들은 양식장 사이를 오가며 뜰채로 남조류와 부유물을 건져냈다.

오후 1시쯤 가두리양식장 주변 수온은 27.8도까지 올라갔다. 다행히 고수온 주의보를 발령하는 28도를 넘지 않았지만 “언제 28도를 넘길지 모른다”며 긴장을 끈을 놓지 않았다. 조피볼락(우럭)은 평균 28도 이상의 수온이 1주일가량 지속하면 폐사가 시작된다.

지난 2일 충남 서산시 부석면 창리 천수만 가두리양식장에 짙은 녹색의 남조류가 떠 있다. 신진호 기자

지난 2일 충남 서산시 부석면 창리 천수만 가두리양식장에 짙은 녹색의 남조류가 떠 있다. 신진호 기자

천수만 해역에는 지난달 26일 오후 2시를 기해 고수온 주의보가 발령된 적이 있다. 이틀 뒤 다시 28도 아래로 떨어졌지만 35도를 웃도는 폭염이 이달 중순까지 이어진다는 예보 때문에 어민들의 걱정이 적지 않았다. 천수만에서는 128개 어가가 조피볼락과 숭어 등 4622만여 마리를 양식 중이다.

어민들은 지난 6월부터 양식장에 검은색 차광막을 설치했다. 햇빛이 바닷물에 직접 닿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차광막을 설치하는 것만으로도 수온을 낮출 수 있다. 차광막 아래에 그늘이 만들어지면 물고기의 안전에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지난 2일 충남 서산시 부석면 창리 천수만 가두리양식장을 찾은 양승조 충남도지사(오른쪽)가 양식장에서 남조류를 건내고 있다. 신진호 기자

지난 2일 충남 서산시 부석면 창리 천수만 가두리양식장을 찾은 양승조 충남도지사(오른쪽)가 양식장에서 남조류를 건내고 있다. 신진호 기자

양식장 어민들에게는 30분 단위로 수온 정보가 전달된다. 국립수산과학원은 고수온 주의보 등 특보 단계도 곧바로 통보하고 있다. 어민들은 “수온이 0.5도만 올라가도 곧바로 배를 띄워 양식장으로 달려간다”고 입을 모았다.

어민들이 노심초사하는 이유는 이미 두 차례 고수온 피해를 겪었기 때문이다. 천수만에서는 2013년 499만9000여 마리(피해 금액 53억원), 2016년 377만1000여 마리(피해 금액 50억원)가 고수온을 견디지 못하고 폐사했다.

검은색 차광막이 설치된 충남 서산시 부석면 창리 천수만 가두리양식장. 차광막은 햇빛이 바닷물을 곧바로 비추는 것을 막아 수온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 신진호 기자

검은색 차광막이 설치된 충남 서산시 부석면 창리 천수만 가두리양식장. 차광막은 햇빛이 바닷물을 곧바로 비추는 것을 막아 수온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 신진호 기자

2016년에는 피해가 8월 중순에 집중됐다. 조류의 흐름이 많지 않은 조금 때였다. 전문가들은 올해도 조금이 돌아오는 4~6일과 16~18일에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며 어민들의 주의를 당부했다.

배영근 창리 어촌계장은 “가장 걱정이 되는 것은 수온이다. 하루 종일 휴대전화와 온도계를 들고 다닌다”며 “자식 같은 물고기를 지키느라 요즘은 하루하루 전쟁을 치르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고 말했다.

충남 서산시 부석면 천수만 가두리양식장에서 한 어민이 스마트폰에 설치된 해수온도 어플을 통해 수온을 체크하고 있다. [연합뉴스]

충남 서산시 부석면 천수만 가두리양식장에서 한 어민이 스마트폰에 설치된 해수온도 어플을 통해 수온을 체크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제는 올해가 지난해보다 온도 상승세가 가파르다는 점이다. 지난해 평균 수온이 20도를 넘은 시점은 5월 30일, 26도를 넘은 것은 7월 20일이다. 20도에서 경계선(26도)까지 도달하는 데 51일이 걸렸다. 하지만 올해는 6월 15일 20도를 넘은 지 40일 만에 경계선을 돌파했다.

이날 양식장에서 모니터링하던 국립수산과학원 서해수산연구소 직원들도 바짝 긴장했다. 28도를 넘는 수온이 일주일가량 지속하면 양식장 내 주 어종인 조피볼락(우럭)의 폐사할 가능성이 높아서다. 직원들은 양식장에 설치한 장비로 수온과 용존산소량을 수시로 확인했다.

가두리 양식장이 밀집해 있는 충남 서해안 천수만 해역. 어민들은 차광막을 설치하고 바닷물을 순환시키며 물고기 살리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사진 충남도]

가두리 양식장이 밀집해 있는 충남 서해안 천수만 해역. 어민들은 차광막을 설치하고 바닷물을 순환시키며 물고기 살리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사진 충남도]

서해수산연구소 이정용 박사는 “천수만 지역은 고수온에 민감한 조피볼락이 70%를 차지하기 때문에 24시간 비상근무를 하고 있다”며 “수온을 낮출 수는 없지만, 바닷물을 순환시키고 산소를 공급하는 등의 방법으로 피해를 예방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산=신진호 기자 shin.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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