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제40기KT배왕위전 : 승부사와 예술가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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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제40기KT배왕위전'

<16강전 하이라이트>
○ . 박영훈 9단 ● . 백홍석 4단

소생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무서운 생명력을 발휘하는 기사로는 단연 조훈현 9단을 꼽을 수 있다. 그는 항복 대신 온몸을 던져 판을 휘젓는다. 종종 기적 같은 역전승을 만들어낸다. 그의 바둑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업적이라 할 1회 응씨배 우승도 비슷한 스토리로 만들어졌다. 김인 9단이나 일본의 오타케 히데오(大竹英雄) 9단처럼 잘 던지는 기사도 있다. 그들은 이미 흠집난 바둑은 설령 이겨도 별 가치가 없다고 믿는 미학파다. 조 9단이 승부사라면 이들은 예술가다.

장면 1(111~119)=흑의 대마가 몰리고 있다. 그러나 113 끊자 박영훈은 114 민다. 살아가라고 한다. 여기서 길게 후사를 도모할 생각이라면 A로 두어 백 5점을 잡고 살아둬야 한다. 하지만 백홍석은 우상 공격에서 실패할 때부터 이미 패장의 마음이 되어 있다.

115, 117, 119는 모두 옥쇄를 꿈꾸는 수들이다. 중앙 백집이 커지면 어차피 불리하다. 그러므로 대마가 죽을지언정 더이상 고통스럽게 연명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참고도=114로는 흑1로 잡고 사는 수가 한눈에 들어온다. 백의 중앙 집이 커져 차이가 벌어지겠지만 승부를 이어갈 수는 있다.

장면 2(120~124)=120에 두자 대마가 쉽게 죽어버렸다. 121로 잡았으나 122,124로 두 집이 나지 않는다. 백홍석 4단은 몇 수를 더 두어보다가 132에서 돌을 던졌다. 4연승 후 16강전에서 탈락했다. 올해 20세가 된 백홍석은 전투력이 뛰어난 신예 강자다. 아쉬운 점은 질긴 맛이 부족하다는 것. 핏빛처럼 선명한 승부는 멋은 있지만 승률은 떨어지게 된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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