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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의사 동맥 파열시킨 주취자···술깨선 "미안" 그리고 석방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달 31일 오전 경북 구미시 구미차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에서 술에 취한 20대 A씨가 전공의를 철제 트레이로 때려 다치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폭행 장면이 담긴 폐쇄회로TV 장면. [사진 대한의사협회]

지난달 31일 오전 경북 구미시 구미차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에서 술에 취한 20대 A씨가 전공의를 철제 트레이로 때려 다치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폭행 장면이 담긴 폐쇄회로TV 장면. [사진 대한의사협회]

경북 구미시 한 병원 응급실에서 의료진을 때려 다치게 한 20대가 경찰에 체포됐다가 2시간 만에 풀려났다. 경찰에 연행된 20대 A씨는 "술에 취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가 폐쇄회로TV(CCTV) 영상을 확인하고 "죽을죄를 지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구미경찰서는 A씨를 불구속 입건해 조사할 계획이다. 구속을 하지 않은 이유는 A씨의 나이가 어리고 초범인 데다 반성하는 태도를 보여서다. 이봉철 구미경찰서 형사과장은 "구속영장심사위원회를 열어 심의한 결과 A씨를 구속할 필요성이 없다고 판단했다"고 전했다.

지난달 31일 오전 경북 구미시 구미차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에서 술에 취한 20대 A씨가 전공의를 철제 트레이로 때려 다치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에 연행되고 있는 A씨. [사진 대한의사협회]

지난달 31일 오전 경북 구미시 구미차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에서 술에 취한 20대 A씨가 전공의를 철제 트레이로 때려 다치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에 연행되고 있는 A씨. [사진 대한의사협회]

A씨는 앞서 지난달 31일 오전 4시쯤 경북 구미시 구미차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를 찾았다. 대학 선배와 술을 마시던 중 선배에게 맞아 얼굴과 머리에 상처를 입고 치료를 받기 위해서였다. 병원에 따르면 A씨는 폭행 전부터 응급실 바닥에 침을 뱉고 웃통을 벗어 던지는 등 난동을 부렸다.

A씨는 응급처치를 하고 차트를 작성하려고 간호사 스테이션에 있던 전공의(인턴 1년차)를 철제 트레이로 가격했다. 정수리 부분을 맞은 전공의는 동맥이 파열돼 전치 3주의 상해를 입었다. 무방비 상태에서 머리를 맞은 전공의는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을 정도로 충격이 심했다고 한다.

현재 이 전공의는 심한 출혈과 뇌진탕으로 어지럼증을 호소해 이 병원 신경외과에 입원한 상태다. 심각한 정신적 스트레스도 호소하고 있다. A씨는 폭행 뒤에도 병원 로비를 배회하면서 입원 환자를 공격하려 했으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연행됐다. 당시 경찰도 A씨로부터 위협을 느껴 테이저건을 겨냥하면서 수갑을 채웠다.

주취자가 전공의를 폭행에 사용한 철제 트레이. [사진 대한의사협회]

주취자가 전공의를 폭행에 사용한 철제 트레이. [사진 대한의사협회]

앞서 지난달 1일에도 전북 익산에서 응급실 폭행 사건이 있었다. B씨(46)는 이날 오후 9시30분쯤 익산시 한 병원 응급실에서 30대 의사의 얼굴을 때리고 발로 걷어차는 등 폭행했다. 당시 B씨는 의사에게 '죽이겠다. 교도소 다녀와서 보자'는 협박도 했다. 하지만 사건 직후 풀려나 비판 여론이 일기도 했다. 구속은 범행 후 닷새가 지난 6일에서야 이뤄졌다.

대한의사협회는 보도자료를 내고 "의료기관 폭력 근절을 위해 의료계가 전방위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와중에도 달라지지 않고 있다. 보건의료인들이 아무리 외쳐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우리의 인내심에도 한계가 있다"며 정부의 즉각적이고 실효성 있는 조치를 촉구했다.

이와 관련해 국회에서도 의료기관에서 의료인을 폭행했을 때 보다 강력한 처벌을 받도록 하는 법률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지난달 31일 오전 경북 구미시 구미차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에서 술에 취한 20대 A씨가 전공의를 철제 트레이로 때려 다치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머리를 다친 전공의가 병상에 앉아 치료받고 있다. [사진 대한의사협회

지난달 31일 오전 경북 구미시 구미차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에서 술에 취한 20대 A씨가 전공의를 철제 트레이로 때려 다치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머리를 다친 전공의가 병상에 앉아 치료받고 있다. [사진 대한의사협회

자유한국당 박인숙 국회의원(서울 송파갑)은 지난달 13일 응급실 등 의료기관에서 의료인의 진료를 방해하거나 폭행 시에 처벌을 강화하도록 하는 의료법,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현행법에선 처벌 수위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을 부과하도록 돼 있다. 법률개정안은 가해자에게 징역형만 내릴 수 있도록 했다.

또 현재는 피해 당사자의 고소가 있어야만 폭력에 대한 처벌이 가능하지만 법률개정안은 피해자가 가해자의 처벌을 원하지 않더라도 처벌할 수 있도록 반의사불벌죄 조항을 삭제했다

지난달 31일 오전 경북 구미시 구미차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에서 술에 취한 20대 A씨가 전공의를 철제 트레이로 때려 다치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간호사 스테이션에 전공의가 흘린 피가 묻어있다. [사진 대한의사협회]

지난달 31일 오전 경북 구미시 구미차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에서 술에 취한 20대 A씨가 전공의를 철제 트레이로 때려 다치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간호사 스테이션에 전공의가 흘린 피가 묻어있다. [사진 대한의사협회]

의료기관 내 폭력은 꾸준히 일어나고 있다. 최근 5년간(2013~2017년) 동안 발생한 전국 9개 국립대학병원 내 폭행·난동 현황을 살펴보면 서울대병원은 23건, 강원대병원 144건, 경북대병원 12건, 경상대병원 8건, 부산대병원 12건, 전북대병원 11건, 제주대병원 14건, 충남대병원 21건, 충북대병원 6곳으로 총 327건의 폭행 및 난동 사건이 발생했다.

이러한 문제는 대부분 술을 먹은 상태에서 벌어졌다. 한국당 김승희 의원실이 최근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가해자 3명 중 2명(67.6%)은 주취자였다. 하지만 대부분 가해자는 법적 처벌을 받지 않거나 수사가 진행되지 않았다.

구미=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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