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미술사 공백 메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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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납·월북 미술인들의 작품공개를 허용한 27일의 정부조치에 따라 지하에 사장돼 있다시피 하던 이들의 작품을 자유로이 볼 수 있게 됐다.
비록 조치의 서두에「1948 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전의 순수한 미술작품에 한한다」는 단서를 붙이고는 있으나 납·월북 작가의 상당수가 우리·현대미술의 초창기 전개과정에서 무시할 수 없는 비중을 차지하고 또 영향력을 발휘했던 인물들이라는 점에서 이데올로기의 경직성 밑에서 공동화했던 한국현대미술사의 특정부분을 메우는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납·월북 작가들의 당시 작품들은 그들의 진보적 이념과 사상성을 거의 담고있지 않다.
좌익 미술단체의 이론적 전위를 자처하던 길진섭이나 김만형 같은 인물들도 글로는 대중의 존재를 강조하고 예술지상주의의 퇴폐성을 비판했지만 막상 자신들이 그린 그림은 그렇질 못해 풍경이나 인물 등이 화제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 그 좋은 예다.
따라서 좌익 비평가들조차도『화가들의 이념적 주장이 실제작품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비판적인 글을 남기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정을 감안할 때 납·월북 미술 작가들이 극히 소수를 제외하고는 북한정착 후 별다른 활동을 보여주지 못한 채 스러져간 원인이 어디 있었던가가 석연히 떠오르게 된다.
그들의 대부분은 이데올로기를 관념으로만 소유한 일종의 로맨티시스트 이었으며 실천이 수반되지 못하는 작가로서의 위상이 북쪽의 엄한 사회주의체제의 벽에 부닥치면서 곧바로 좌절해 버리고만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 많은 미술계 인사들의 추측이다.
특히 작가의 생명인 창조성이 무시되고 단지 당이나 국가에서 내려주는 주제를 기계적으로 제작해내야 하는 분위기에서 진정한 작가적 역량이 발현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이들 작가의 납·월북이전 작품들은 당시 화단을 지배하고있던 미술주제의 보편적 경향을 크게 일탈 하는게 없다.
서양화의 경우는 거의 대부분이 구상기법을 살린 인물·정물·풍경이 차지하고 있으며 동양화도 산수나 화조 등으로 전통적이면서도 .정태적인 화제에 머무르고 있음을 볼 수가 있다.

<정교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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