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정말 하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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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부·여당은 이제야 말로 정말 5공 청산에 단호히 나설 것인가.
노대통령이 27일의 당정회의에서 지시한 내용을 보면 5공 청산문제에 대한 정부·여당의 태도가 달라질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노대통령은 △5공 비리에 대한 성역 없는 단호한 수사 △민정당 의원들의 은폐 없는 능동적 척결자세 △악법의 전향적 개폐 등을 정부와 민정당에 지시했다.
우리는 노대통령의 이 같은 지시가 지금까지 5공 청산에 미온적·소극적이던 여권의 일대 자세 전환이 아닌가 하고 기대를 걸면서도 이런 대통령의 지시가 구체적으로 실천에 옮겨질 지에 관해서는 여전히 마음을 놓기 어렵다는 생각을 하면서 주시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이다.
왜냐하면 노대통령 자신을 비롯해 여권의 많은 요인들이 그 동안 기회 있을 때마다 『비리에 성역 없다』 『단호히 척결할 것』이라는 말을 수없이 되풀이 해왔지만 실제 행동은 엉거주춤한 소극적 범위에 머물러 말과는 크게 달랐기 때문이다. 바로 지난번 국정감사에서 민정당 의원들이 어떤 자세로 임했는지만 봐도 여권이 말 다르고 행동 다르게 움직여 왔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여권이 노대통령의 이번 지시를 또 한번 부도내지 않고 확실히 실천에 옮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노대통령 자신의 결심과 조치가 필요하고 5공 청산을 가로막는 여권내부의 구조개편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지금까지 여권의 청산의지가 실천으로 반영되지 못한 것은 신·구 세력이 혼재한 여권내부의 구조에 중요한 원인이 있었다. 5공 비리를 5공 세력이 청산할 수는 없는 일이다.
진정한 5공 청산을 위해서는 5공의 권위주의적 제도도 고쳐야 하지만 권위주의적 사고방식과 그런 제도 운용에 익숙한 사람도 바꿔야함은 두말할 필요조차 없다. 따라서 앞으로 여권이 노대통령의 말대로 단호한 5공 청산을 하자면 내부의 인사개편작업이 불가피하고, 한꺼번에 인사개편을 하기 어려운 사정이라면 대통령 자신이 직접 나서서 구체적인 청산작업을 지휘하면서 가능한 한 빠른 템포로 내부구조를 개편해 나가는 방법밖에는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노대통령 자신의 결심이 가장 중요한 열쇠라는 점을 재삼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새 정부가 들어선지도 이미 8개월이다. 그 동안 어떤 인물이 5공적이고 어떤 인물이 6공에 맞는 사람인지 파악하기에는 충분한 기간이라 할 수 있다. 진행중인 국회의 대정부 질문과 곧이어 닥칠 예산심의 등을 생각하면 당장 당정개편을 단행하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점은 이해가 간다.
그러나 새 공화국을 표방하면서 민주화를 추진하고 비리척결을 다짐하는 새 정부 아래서 8개월이나 지나도록 여전히 구시대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당정의 모습은 딱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가령 언론통폐합과정에서 너무나 억울하게 빼앗긴 것이 만천하에 드러난 경기신문과 광주MBC문제에 대해 문공장관이 국회에서 무리가 있었음을 겨우 시인하고 새로 요건을 갖춰 등록을 신청하면 적극 검토할 것이라는 답변은 무엇인가. 아무리 정부가 청산의지를 못 갖췄다 하더라도 명백해진 과거의 잘못을 시정하려는 최소한의 자세는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굳이 이런 예를 들지 않더라도 5공 청산 작업은 서둘러야 할 이 시절 최대의 과제다. 우대통령은 이번에 결심을 굳게 하고 당정을 독려하여 빠른 기간 안에 국민이 납득할 청산작업을 마무리함으로써 내년부터는 더 이상 과거에 발목을 잡히지 않고 미래 지향적인 나라의 발전 문제를 논의할 수 있게 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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