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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 "진보와 민주의 탈을 쓴 위선자, 사기꾼에 대한 소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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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장편 『해리』 출간한 공지영씨

소설가 공지영(55)씨가 새 장편소설 『해리』(전 2권, 해냄)를 냈다. 성추행 혐의로 사제복을 벗은 전직 가톨릭 신부, 그와 내연 관계인 타락한 장애인 후원기관 여 대표가 나오는 얘기다. 이런 설정은 공씨가 2015년부터 실제로 겪어온 고소고발 사건을 연상시킨다.
 작품을 통한 현실 고발이 공씨에게 낯선 일은 아니다. 공씨는 그간 철저하게 현실과 함께 호흡하며 그 안에 숨겨진 문제점을 들춰왔다. 『도가니』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등이 대표적이다. 이번에는 작가 자신이 결부된 송사를 직접 다뤘다는 점에서 이전 작업과 구분된다. 공씨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소설 속 얘기는 특정인의 이야기가 아니다"라고 강변하지만, 현실과 예술 사이에서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는 모양이다.
 30일 기자간담회에서 공씨를 만났다. 그는 "대학 시절 읽은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을 읽은 적이 있다. 작가에게는 시대를 읽어야 하는 사명이 있고, 그 시대를 읽어서 날 것이 아닌 구체적인 외피를 입혀야 한다는 대목이 습작 시절 인상적이었다"며 "이번 소설은 어떤 악녀에 관한 보고서"라고 했다. 이어 "이명박근혜 9년 동안 목격한 악의 단순함과는 다르게, 진보와 민주의 탈을 쓰는 게 돈이 된다는 걸 일찌감치 체득한 사기꾼들이 몰려오고 있다. 앞으로 악은 진보의 탈을 쓰고 엄청난 위선을 행하는 무리가 될 것이라는 점을 소설로 형상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씨는 "그 대표적인 게 타락한 가톨릭 사제, 위선적인 장애인 봉사자, 민주주의 표방하며 새로운 형태의 돈을 긁어 모으는 사기꾼들"이라고 말했다. "막말하는 극우 정치인보다 새롭게 문제의식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이 소설을 낳게 했다"고 부연했다. "특히 소설에 나오는 대구희망원 사건은 실제로 일어난, 9년 동안 312명이 사망한 사건인데, 가톨릭 대구대교구가 아무 책임도 지지 않았고, 이에 관련 보도를 기초로 소설에서 다뤘다"고 했다.
 -소설에 나오는 전직 가톨릭 사제의 의한 사이버 명예훼손 고소는 지금 실제로 공 작가가 겪고 있는, 진행 중인 사건 아닌가.
 "지난해 무혐의로 끝났다. 전혀 진행되고 있지 않다. 역사소설을 쓴다고 해도 내 경험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것 아닌가. 이번 소설은, 내가 가톨릭 신자이기도 한데, 가톨릭의 비리를 정면으로 다뤘다. 출간 전 몇몇 사람들에게 소설을 미리 보여줬는데 이외로 사람들이 충격을 받지 않아 내가 오히려 충격받았다. 우리 사회가 전방위적으로 부패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2009년 장애인 복지시설 문제를 고발한 『도가니』와 비슷한 느낌이다.
 "새롭다고 하며 썼는데 왜 비슷하게 느끼는지 모르겠다. 『도가니』가 싸움 과정을 다뤘다면, 이번에는 약자를 괴롭히는 당사자들의 거짓말과 위선을 탐구했다. 훌륭한 작가가 되기 위해 그간 소설을 쓰지 않았다. 소설가가 직업이었고 가장 노릇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능력이었다. 이왕이면 좋은 세상 만드는 데 소설이 기여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 지구가 1㎝라도 좋은 곳이 됐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문학적 평가는 알아서 하는 거고. 그런 것까지 신경 쓰며 소설을 쓰고 싶지 않다."
 -이번 소설도 현실비판인데.
 "내 소설이 다 현실비판이다. 12번째 장편인데, 여태 모든 소설들이 현실 취재를 바탕으로, 소설적으로 재구성한 거다. 이번 소설의 배경인 무진을 실제 어떤 지방도시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지방 토호 등 기득권 세력들에 의해 수많은 약자들이 죽어가는 것을 수많은 도시에서 보았다. 그런 면에서 소설의 무진은 대한민국의 압축적 도시다. 10년 동안 약자를 죽이는 침묵의 카르텔이 작동하는 상황이 단지 전주시에만 해당되고 나머지 대한민국은 멀쩡한 곳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거짓말과 위선을 탐구해보니 어떻던가.
 "고발만을 목적으로 이렇게 긴 소설을 쓰지는 않는다. 발언하고자 하는 게 소설의 형식으로 나타났을 때 독자들이 재미 있게 읽을 수 있어야 한다. 다 읽고 나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는 소설을 쓰고 싶다. 소설 한 권 써서 이 나라가 뒤집어지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오히려 이상한 거다. 소설의 여주인공 한이나의 어머니, 서유진의 발언 통해 내가 하고 싶었던 핵심 메시지를 드러냈는데, 예술은 의외로 선해야 한다, 선이 오히려 다채롭다. 반면 거짓말과 위선은 끊임 없이 다른 거짓말을 베끼기 때문에 생각보다 지루하고 단조롭다는 거다."
 -여성주의 소설을 많이 써왔다. 최근 고은 시인이 성추행 의혹을 폭로한 최영미 시인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는데.
 "아무런 할 말이 없다. 안 그래도 오늘 아침에 간담회에서 이런 질문 나오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생각했는데, 내가 워낙 생각도 없고 없고 앞뒤고 못가리고 어리석어서, 벌거벗은 왕이 지나가면 아무 곳에서나 어, 벌거벗었네 얘기한다. 내가 그런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얘기다. 그래서 이 사태가 벌어지지 않았나 생각한다. 나는 작가는 어린아이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벌거벗은 사람을 보면 벌거벗었다고 외치는."
 -고은 시인 소송 건에 대해 아무 할말이 없다고 했는데 의혹에서 묘사된 행동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고은 시인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다. 재작년 한국작가회의 징계위원장을 맡아 문제가 되는 문인들에 대한 징계 결정을 내렸는데 나중에 임원단에서 최종 징계를 하지 않아 유야무야된 걸로 알고 있다. 고은 시인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는 게 거의 술 마신 적이 없다. 아는 게 진짜 없다."

 -성폭력 폭로자들에게 대한 소송 등 후폭풍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이 소설이 사람들의 그런 정의감을 거꾸로 이용하는 여자에 대한 이야기, 약자에 대해 선의의 도움을 주려는 좋은 마음을 이용하는 악인들에 대한 소설이어서 그 이야기는 다른 자리에서 이야기하는 게 적절한 것 같다."

 -최근 이재명 경기도 지사의 성추문과 관련된 SNS 활동으로 독자들이 반감을 갖게 돼, 이번 소설이 영향 받을 거라는 우려는 없었나.

 "재작년에 지방도시 북콘서트에 후배를 옆에 태우고 운전하며 가는데 한 육교 현수막이 떨어져 차도 쪽으로 내려져 있더라. 112에 신고했다. 그 전에 아이들하고 동해안에 다녀오는데 앞에 달려다건 차가 그야말로 붕 뜨더니 떨어지더라. 차 세우고 119 신고한 다음 119가 도착했을 때 차에서 내려서 안내하고 돌아왔다. 한번은 아파트에 살 때 고등학생 아이들이 한 아이를 때리고 있더라. 119와 경찰에 신고했는데 경찰이 늦게 도착해 경찰관들에게 내가 소리소리 지르며, 그러다 저 아이 죽으면 어떻게 할 거냐고 따졌다. 한 사람이 울고 있는데, 부당한 피해를 당하고 있는데, 내가 작품 내기 얼마 전이라고 해서, 오랜 만에 작품 낸 참이리고 해서 신중하게 생각하자, 그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면 내가 세상에 대해 무슨 얘기할 수 있겠나. 나는 평생 그렇게 못 살았다. 먼저 책 낸 다음 나중에 저 여자 구해야지, 그런 식으로 책 내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런 생각에서 SNS 활동을 했다."
 -인터넷 온라인 서점에 악플러들이 관심종자라는 식으로 악플을 달아놨는데.
 "그분들도 나름 국가와 나라를 위해 그런 일을 한다고 생각한다. 비아냥이 아니다. 진짜로 그렇게 생각한다. 그분들은 내가 거짓말 한다고 생각하고, 나와 싸워야겠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시간 지니면 해결될 일이다. 온라인 서점 리뷰 코너에 아직 책이 발간되지도 않았는데 그런 댓글 올리는 건 무례하다고 생각한다. 눈살 찌푸려지는 일이다. 나는 지금까지 1200만 부 가깝게 작품이 팔린, 즉 독자들이 많은 것을 주신 작가였다. 내 능력보다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내가 키워야 하는 아이들 있는 것도 아니고, 당분간 병원비 들어갈 일도 없다. 내 노년을 생각할 때 잘 늙고 싶다. 나라와 국가를 위해, 한 여자를 위해 한 증언이 그렇게 나쁜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가 너그럽게 가기에는 그동안 겪은 일들 너무 극악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해한다. 앞으로도 쓰고 싶은 소설이 많다. 공상과학, 사랑 이야기, 고려에 관한 소설을 쓰고 싶다. 1990년대 중반까지 나는 페미니즘 작가, 운동권 후일담 작가로 불렸는데, 언제까지 활동할지 모르지만 내 안의 무한한 상상력을 펼치고 싶다. 10년 후 내 모습은 또 다른 식으로 변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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