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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쪽방촌 주민들 "문재인 정부, 폭염 재난 선포해야"

중앙일보

입력

27일 오전 11시 대구 현대백화점 대구점 앞에서 폭염 재난 선포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쪽방촌에 10년 거주한 변영호(54)씨. 대구=백경서 기자

27일 오전 11시 대구 현대백화점 대구점 앞에서 폭염 재난 선포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쪽방촌에 10년 거주한 변영호(54)씨. 대구=백경서 기자

"40도의 폭염을 뜨거운 바람이 나오는 선풍기 하나로 버티고 있습니다. 건물에 화장실은 하나뿐이라 샤워도 어렵습니다. 1층에 사는 사람들은 집 바닥이 뜨거워서 발에 화상을 입을 정도입니다. 말로만 재난을 외칠 게 아니라 주거빈곤지역을 재난지구로 선포해 주세요." (변영호(54)·대구 서구 쪽방촌에서 10년 거주)

대구 쪽방촌 실태조사 결과 #48가구 중 5가구 "창문조차 없어" #1970년대 이전 지어진 집 대부분

대구 지역의 주거빈곤층이 문재인 정부에 폭염 재난지구로 선포해줄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폭염에 취약한 장애인이나 쪽방촌 거주민 등 빈곤층을 위해 정부 차원에서 폭염 대책을 수립해달라는 요청이다.

지난 26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역 인근 쪽방촌에서 대한적십자사 봉사회 영등포지구협의회 봉사원들이 수박화채와 지원 물품을 들고 주민들을 방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6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역 인근 쪽방촌에서 대한적십자사 봉사회 영등포지구협의회 봉사원들이 수박화채와 지원 물품을 들고 주민들을 방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反빈곤네트워크·대구환경운동연합 등 10개 단체는 27일 오전 대구 중구 현대백화점 대구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문재인 정부가 폭염을 재난으로 관리하겠다고 한 만큼 주거빈곤층들을 위한 폭염 재난지구 선포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기자회견문에서 폭염 재난 선포를 통해 ^중앙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논의테이블 마련 ^임시 거주시설 제공 ^주거빈곤층의 폭염 관련 건강실태조사 ^전염성 질환 예방을 위한 소독·방역 활동 ^이동 목욕서비스 등 체계적이고 입체적인 대응을 촉구했다.

27일 오전 11시 대구 현대백화점 대구점 앞에서 폭염 재난 선포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백경서 기자

27일 오전 11시 대구 현대백화점 대구점 앞에서 폭염 재난 선포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백경서 기자

서창호 反빈곤네트워크 집행위원은 "최근 대구를 비롯한 한국사회의 폭염은 재앙 수준"이라며 "40도를 오르내리는 폭염에 건강한 시민들도 일상생활을 영위하기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쪽방이나 고시원 등 주거빈곤층은 하루하루를 고통 속에서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26일 서울 영등포역 일대에서 쪽방촌 주민들이 대한적십자사 봉사회 영등포지구협의회에서 준비한 수박화채를 받기 위해 길게 줄을 서있다. 이날 행사는 계속되는 폭염 속에 힘겨운 여름을 견디고 있는 쪽방촌 주민들이 건강히 여름을 보낼 수 있도록 응원하는 취지로 마련됐다. [뉴스1]

26일 서울 영등포역 일대에서 쪽방촌 주민들이 대한적십자사 봉사회 영등포지구협의회에서 준비한 수박화채를 받기 위해 길게 줄을 서있다. 이날 행사는 계속되는 폭염 속에 힘겨운 여름을 견디고 있는 쪽방촌 주민들이 건강히 여름을 보낼 수 있도록 응원하는 취지로 마련됐다. [뉴스1]

이날 기자회견에 참여한 대구환경운동연합에서도 주거빈곤층에 대한 혹서기 대책 마련과 지원을 요구했다. 계대옥 대구환경운동연합 팀장은 "전국적으로 1000명이 넘는 온열질환자가 발생하고, 급기야 사망에까지 이르고 있다"며 "주거빈곤층은 폭염이 시작되기도 전인 지난 6월 실태조사에서도 어지러움과 두통을 호소했고, 구역질과 구토, 호흡곤란, 지병 악화 등을 경험한 이들도 있다"고 설명했다.

대구환경운동연합이 지난 6월 대구쪽방상담소와 대구 일대 쪽방을 중심으로 에너지 빈곤층 실태조사에 나선 결과 48가구 중 20가구가 '폭염으로 건강에 이상이 있다'고 답했다. 응답자 48가구의 평균연령은 65.3세, 그중 노인세대 26명의 평균연령은 72.7세로 대부분 1인 가구다.

건물 현황을 조사한 결과 대부분 1970년대 이전에 지어진 노후주택으로 평균 5.4㎡(1.63평)의 좁은 주거공간을 사용하고 있었다. 실내·외 온도와 습도 차이가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난 가운데 31가구가 단창, 5가구는 창문조차 없었다.

행안부 폭염대책회의 [중앙포토]

행안부 폭염대책회의 [중앙포토]

계대옥 팀장은 "단열이 되지 않는 열악한 주거환경으로 인해 폭염에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에너지효율 개선 및 보급, 에너지 요금 할인, 연료비(연탄·등유) 지원 등 다양한 에너지 복지제도가 혹한기 난방 부분에 집중된 측면이 있는데, 폭염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는 만큼 그에 준하는 지원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최병우 주거권실현대구연합 사무국장은 "일주일에 두 번씩 자원봉사를 나가보면 매주 폭염에 정신을 잃고 실려가는 주민들을 본다"며 "통상적으로 물난리가 나면 정부에서 대피소 등을 마련해 주는 것처럼 주거빈곤층이 잠이라도 잘 수 있게 임시거주시설을 마련해 줘야 한다"고 했다.

한편 대구의 이날 오전 최저기온은 28.6도로 1907년 1월 기상관측을 시작한 이후 최고를 기록했다. 대구와 포항은 밤사이 최저 기온이 25도 아래로 떨어지지 않는 열대야도 15일째 지속되고 있다. 기상청은 주말에도 전국에 무더위가 이어질 것으로 예보했다.

대구=백경서 기자 baek.kyungse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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