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벗어난「법대로」|김수길<경제부 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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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법대로」란 참 좋은 말이다.
이번 국정감사에서는 참 오랜만에 그「법대로」의 정신이 칼날 같은 기준이 되어 과거 법을 무시하고 벌어진 권력의 비리나 행정의 편의성이 하나하나 들춰지고 있다.
부실기업 정리에 대한 증언을 들은 야권 3당이 24일 전직 부총리·재무장관·은행장들을 줄줄이 사직당국에 고발키로 했다는 것도 바로「법대로」의 정신일 것이다.
그러나「법대로」의 원칙을 한번 꼬장꼬장 따지자면 정작 사직당국에 먼저 갔어야 할 사람들은 바로 14일 국회 재무위의 증언대에 전직 장관·은행장들과 나란히 섰었던 부실 기업주들이다.
아직도 국회 증언대에 나와『방만한 경영이 아니었다』고 말들 하지만 지금 그들이 그렇게 자유롭게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당시 은행이 부도를 내지 못했고 따라서 사직당국이 그들을 부정 수표단속법 등에 따라 잡아 가두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와서『방만한 경영이 아니었다』고 뻗대는 기업주는 고발되지 않고『기업부실화의 책임을「정부도」면할 수 없다』고 인정하는 장관이 고발된다는 것은 아무래도「법대로」의 정신에 크게 어긋난다.
당시 부도를 내서 그들을 구속시키지 못했던 것은 그들이 예뻐서가 아니었다.
법대로 했을 경우 거덜날 대로 난 부실기업을 인수해갈 기업은 나서지 않았을 것이고 그로 인한 대규모 실직사태나 하청기업들의 연쇄도산이 뻔히 눈앞에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시작한 부실기업의 제3자 인수를 끝까지 금융과 행정의 영역에 맡겨두지 않고 안기부장 등 권력층이 개입했다면 부실기업 국정감사의 초점은 바로 그 같은 부분에 맞춰져야한다.
이런 부분을 제대로 밝히지 않고 전직장관의「권리행사방해죄」와 같은 부분만을 들춰낸다는 것은 문제의 핵심에서 벗어나 변두리만을 맴돌고 있다는 인상을 지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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