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의원님, 해외시찰 한번"···'김기식 출장' 원천 금지한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국민권익위원회가 국회의원들이 피감기관 돈으로 해외출장을 가던 관행을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을 적용해 제한하기로 했다.

권익위, 1483개 공공기관 해외출장 점검 #"청탁금지법 엄격 해석, 외유성 출장 금지"

권익위는 26일 공공기관 해외출장 지원 실태 점검 결과를 발표하고, 이같은 종합대책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권익위는 행정안전부 등과 함께 지난해 5월 범정부점검단을 꾸려 청탁금지법의 적용을 받는 공공기관 1483개의 해외출장 사례를 전수 조사했다. 지난 2016년 9월~올 4월 말 있었던 출장이 조사 대상이었다.

박은정 국민권익위원장이 26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공공기관 해외출장 지원 실태 점검 결과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은정 국민권익위원장이 26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공공기관 해외출장 지원 실태 점검 결과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은정 권익위원장은 “청탁금지법은 일부 예외를 제외하고는 공직자가 직무와 관련한 금품을 수수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지한다”며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번 점검에서 일부 공직자들이 해외출장 시에 피감·산하기관, 또는 직무 관련 민간기관·단체 등으로부터 비용을 지원받는 부적절한 관행이 아직도 우리 사회에 남아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청탁금지법상 예외가 허용되는 공직자의 직무 관련 금품 수수는 ▶사적 거래에서 발생한 채무 이행 등 ▶공식적 행사에서 주최자가 통상적·일률적으로 제공하는 경우 ▶법령·기준 또는 사회상규에 따른 지원 뿐이다.

이번 조사는 지난 6월 청와대의 지시로 이뤄졌다. 사퇴한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이 국회의원 시절 피감 기관의 돈으로 해외출장을 다닌 사실이 밝혀지면서 실태 파악을 요청하는 국민 청원 등이 이어진 데 따른 것이다. 김 전 원장은 국회의원이었던 2014년 피감 기관인 한국거래소로부터 457만원을 지원받아 우즈베키스탄 출장을 갔고, 정무위원회 간사였던 2015년에는 피감기관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으로부터 출장비 전액인 3000만원을 지원받아 미국, 벨기에, 이탈리아, 스위스 등을 9박 10일 일정으로 다녀왔다. 해당 출장은 청탁금지법 시행(2016년 9월28일) 전에 이뤄져 위법으로 판단되지는 않았다.

외유성 출장 의혹을 받은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이 지난 6월 15일 오후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검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마친 뒤 청사를 나서고 있다. [뉴스1]

외유성 출장 의혹을 받은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이 지난 6월 15일 오후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검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마친 뒤 청사를 나서고 있다. [뉴스1]

권익위 조사 결과 지원 대상자를 객관적 기준 없이 정하거나 선정 절차가 적절하지 않은 경우, 또 법령 상 근거가 없는데도 피감·산하기관이 감사·감독 기관 소속 공직자의 해외출장을 지원한 사례는 22개 기관 51건이었다. 지원받은 공직자는 96명이었고, 소속기관별로는 ▶국회의원 38명 ▶지방의회 의원 31명 ▶보좌진 및 입법조사관 16명 ▶상급기관 공직자 11명 순이었다. 중앙 부처 중 기획재정부, 통일부, 산림청이 이런 유형의 해외출장 부당 지원에 연관된 것으로 파악됐다.

권익위는 피감기관인 A 공기업이 소관 상임위원회 소속의 국회의원과 입법조사관 등을 지원한 해외출장의 경우 사업현장 단순 시찰, 파견인력 격려 등의 활동만 이뤄진 것은 부당지원 소지가 있다고 소개했다. 이는 국익을 목적으로 한 출장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공직자가 밀접한 직무 관련이 있는 민간기관 단체 등으로부터 부당하게 출장비를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는 사례는 28개 기관의 86건이었다. 이를 통해 실제 지원을 받은 공직자는 165명이었다. B부의 경우 모범공무원상을 받은 공직자들을 위해 매해 관행적으로 포상 차원에서 부부 동반 해외출장을 보내줬는데, 이 비용을 자체 예산으로 충당한 것이 아니라 B부와 계약을 맺고 있는 위탁납품업체가 내도록 했다.

이번 조사는 서면자료 위주의 실태점검으로 대면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권익위는 청탁금지법 위반 소지가 있는 사례를 해당 기관에 통보할 예정이며, 통보받은 기관이 당사자 소명 청취 등 절차를 거쳐수사 의뢰, 징계 등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권익위는 부정청탁법 해석기준 보완 등을 통해 이런 부당지원 사례들을 근절하겠다는 방침이다. 감사·감독기관과 피감·산하 기관 사이처럼 직무 관련성이 명확한 공직자를 위해 해외출장을 지원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금지하기로 했다. 청탁금지법상 일부 허용되는 예외적 사유도 엄격하게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박은정 위원장은 “청탁금지법 시행 이전에 만들어진 법령도 해외출장 지원에 대한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경우 청탁금지법의 입법 취지를 반영해 보완하거나 개선하겠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국익 등 차원이 아닌 단순 협력 사업이나 외유성 프로그램, 선진지역 시찰 등의 명목으로 이뤄졌던 해외출장은 모두 제한된다. ‘국익을 위해 해외출장이 필요한 경우’로 볼 수 있는 지원도 법령·기준에 지원할 수 있는 근거를 명확히 마련하도록 하기로 했다.

유지혜·권유진 기자 wisepe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