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 지출 29%가 약값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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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부담이 늘어나는 것은 환자만의 일이 아니다. 약값 부담이 늘면 건강보험에서 지출해야 할 비용도 증가한다. 자연히 보험료가 올라 국민 부담도 커질 수 있다. 의사들이 지나치게 많은 약을 처방하고, 불합리한 약값 결정 체계를 일찍 손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보건복지부는 3일 약값을 적정 수준으로 낮추겠다고 나섰다. 총 의료비 가운데 29%에 이르는 약값 비중을 2011년까지 24%로 줄일 계획이다.

그러나 다국적 제약업체와 국내 제약업체가 일제히 반발하고 나섰다. 미국 대사관 측에서도 정부 방침의 재검토를 요구하고 나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쟁점으로 비화할 전망이다.

◆ 약값 부담=선진국 병원에선 한번 진료에 1, 2종류의 약을 처방한다. 그러나 국내 병원에선 3, 4종류의 약을 처방한다. 약값을 결정하는 체계도 엉망이다. 오리지널(처음으로 개발된) 약의 가격은 미국.일본 등 선진국 7개국 약값의 평균치를 기준으로 정한다. 복제약은 신약 가격에 연동한다. 우리보다 소득 수준이 높은 나라의 가격을 기준으로 삼다 보니 비쌀 수밖에 없다. 게다가 나중에 복제약이 나오더라도 가격을 조정할 수단도 없다. 이 때문에 2001년 4조원 수준이던 건강보험의 약값 지출은 지난해 7조원 이상으로 늘었다. 총 의료비에서 차지하는 약값 비중도 같은 기간 23.5%에서 29%로 증가했다.

◆ 정부 "약값 낮추겠다"=정부는 9월부터 효과 대비 값이 싼 약만 건강보험을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지금까지는 제약회사가 신청만 하면 지나치게 비싼 약 일부를 빼고는 대부분 건강보험이 적용됐다. 또 앞으로 약값은 제약사와 정부가 협상을 해 정한다. 호주.스웨덴.프랑스 등이 이런 제도를 쓰고 있다. 이미 건보 적용을 받고 있는 약은 단계적으로 약값을 재평가하고, 약효에 비해 비싼 약을 제외할 방침이다.

◆ 미국 정부 반발=미국 정부가 이례적으로 정부의 정책을 재검토할 것을 요구했다. 한국 내 영업이익이 많이 줄어들 것을 예상한 다국적 제약회사의 반발을 의식한 것이다. 미국계 제약사는 5200억 달러에 달하는 전 세계 의약품 시장의 절반을 점유하고 있다. 국내 제약업체의 반발도 거세다.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못하는 약은 사실상 시장에서 강제 퇴출당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군소 제약업체에는 치명적이다.

유시민 복지부 장관은 "이번 약값 조정 계획은 국내외 제약사 모두에 적용되는 중립적인 제도"라며 미국의 요구를 반박했다.

이태복 전 복지부 장관은 2002년 퇴임하면서 약값 인하에 반대하는 다국적 제약업체의 압력 때문에 경질됐다고 밝혀 파문을 일으켰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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