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평화구상 공감대 확산|노 대통령 방미 5박6일 결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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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노태우 대통령의 유엔연설 및 워싱턴정상회담은 6공화국의 외교적 입지를 좋은 출발점에 올려놓은 것으로 평가된다.
유엔연설은 세계무대에 한국의 이미지와 존재를 한 단계 격상시키고 활동의 법의를 넓히는데 큰 획을 그었고 정상회담은 한미관계의 제반쟁점들을 비교적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정지했을 뿐 아니라 변함없는 협조를 강도 높게 다짐했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의 방문이 기대이상의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 ▲개발도상국 중 가장 모법 적인 경제 발전 ▲노 대통령이 내건 대내간 정책슬로건의 합리성 및 국제성이 가장 큰 원인이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올림픽 이후 높아진 한국에 대한 해외의 성가는 노 대통령의 연설에 대한 유엔총회장의 박수와 서가·동구라는 블록의 구분 없는 적극적인 지지 반응에서 확인할 수 있었고 미국 조야의 여론이나 교포들의 모국 관에서 도 금석지감이 느껴질 정도로 긍정적이었다.
한 중진의 교관은 『요즘 국제사회로부터 느끼는 대한인식의 변화는 지난 83년 중국 민항기불시각 사건이후 중국 쪽 에서 일어난 변화를 연상시킨다』고 말했다. 당시 과잉친절이니 해서 국내외 비판도 많았지만 융숭한 대접을 받고 간 중국 사람들이 본국정부에 알린 한국의 실상은 그후 한중관계증진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는데 이 같은 예가 나라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지금 올림픽에 참가했던 1백60여 개국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과 소련이 노 대통령의 동남아 6개국회담제의에 즉각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은 그들의 북한에 대한 이해관계가 「최소한의 정치적인 의미」로 축소되고있는 반면 한국과의 경제교류를 점점 당면 현안으로 부각 시켜 가는 것 이 아닌가하는 관측을 낳게 했다.
이는 6개국회의의 성사여부를 중소가 확신해서 보인 반응이라기보다는 경제협력을 위해서는 평화적·비폭력적 방법으로 북한에 압력을 가해 북한을 국제사회로 끌어내려는 한국의 기본입장을 이해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아무튼 유엔의 반응이나 미국 조야 의 대체적 여론은 통일문제의 해결을 국제화한 노 대통령의 논리가 민족간 자주적 해결이라는 북한의 주장보다 문제해결의 과정상 더 합리적이라는 공감대를 넓혀 가는 듯 한 인상을 주었다.
노 대통령의 유엔연설이 한국의 화해·개방노선을 선언적으로 세계에 알리고 우리의 변화상을 부각시키는데 초점이 주어졌다면 한미정상회담은 한국특유의 생존·발전방식을 구체적으로 재확인하는데 비중을 둔 회담이었다.
아무리 국제간의 화해·평화무드가 고조되어도 한반도와 동남아에 있어 북한의 군사력과 소련의 전술·전략에 변화가 없는 한 주한미군 감축·작전권 이양은 고려하지 않는다는 단호한 입장을 천명했기 때문이다.
양국 정상은 결국 한국이 추구하고있는 개방·화해 외교정책이나 대북한 자세전환도 변함없는 한미안보협력 위에서만 가능하다는데 전적인 견해일치를 보았다.
「레이건」대통령은 크게 보아 한국내의 민주화 진전 및 노 대통령의 기본노선이 미국이 바라는바와 같다는 점을 확실히 하고 물러날 대통령이긴 하지만 적극적인 지지를 표명함으로써 후임자에게 「무언의 인계」를 도모하는 측면도 있었다. 회담에서 한미간에 가장 뚜렷한 이견이 나타난 것은 통상문제였다.
「레이건」대통령은 오찬회담에 당초예정보다 많은 장관들을 배석시켰는데 이는 흑자 쪽 만큼 역활과 책임을 다하지 않는다는 한국에 대한 미국인들의 불만을 의식, 대통령선거전에 공화당정부의 노력을 부각시키려는 의도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반미감정에 대해서는 양국정상이 피차 노골적으로 언급하기를 꺼렸지만 미국언론과의 대화에서는 이 문제가 가장 날카롭게 제기됐다.
노 대통령이 이번 방문에서 빡빡한 일정을 뉴욕타임스·워싱턴포스트·월스트리트저널 등 가장 영향력이 큰 언론과의 대화 또는 인터뷰에 할애한 것 은 이것이 미국인의 오해를 씻고 우리의 진의를 전하는데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믿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호놀룰루=전육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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