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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영세 자영업자, 최저임금 주고 싶어도 능력이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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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최승재 소상공인연합회 회장

최승재 소상공인연합회 회장

2013년 ‘알바 연대’는 “최저시급이 1만원은 돼야 근로자들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왜 최저임금이 1만원이어야 하는지를 뒷받침하는 통계자료가 없다. ‘최저임금 1만원’은 눈길을 끌고 상징성이 강하지만 실체가 없다. 이를 정부가 정책으로 입안해 실현하려면 치밀하고 꼼꼼한 검토와 준비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를 지불할 능력이 있는 사용자들이 얼마나 되는지 실태조사를 하지 않았다. 지급능력이 없을 경우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지 연구도 하지 않았다.

‘최저임금 1만원’의 근거 불분명 #정부, 임금 지불능력 연구 안 해 #급격 인상으로 자영업 폐업 위기 #5인 미만 사업장 차등 적용해야

문재인 정부가 최저임금을 급격하게 인상하면서 자영업자들은 고용감축과 폐업의 갈림길에 서 있다. 영세 자영업자들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는 상황에서 왜 최저임금 1만원을 계속 밀어붙이고 있는지 의아할 따름이다. 부작용이 심하게 나타나고 있는데도 정부가 최저임금 정책의 기조를 바꾸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노동계가 반발하기 때문인 것 같다.

노동계는 ‘최저임금 1만원’을 조속히 실현하라고 촉구한다. 그렇지 않으면 저임금 근로자들이 생계를 유지하기가 어렵다고 노동계는 주장한다. 또한 업종별로 최저임금을 다르게 정하면 최저생계비도 벌지 못하는 근로자들이 늘어나서 양극화가 더 심해질 것이란 논리를 편다.

자영업자들도 그들의 자녀가 근로자나 알바생일 수 있기 때문에 최저임금 인상을 반대하지 않는다. 소상공인연합회는 단 한 번도 최저임금 동결이나 삭감을 주장한 적이 없다. 다만 영세 자영업자들의 경우는 그들의 지급능력을 고려해 최저임금을 결정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노동계는 최저임금 1만원이 실현돼야 저임금 근로자의 생계유지가 가능하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번지수를 잘못 짚은 것이다. 최저임금이 대폭 오르면 일부 저임금 근로자들은 혜택을 받겠지만, 또 다른 저임금 근로자들은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고임금 근로자, 중임금 근로자, 저임금 근로자, 근로 능력 있는 미취업자 중에서 정책의 최우선 순위로 삼아야 하는 대상은 근로 능력 있는 미취업자들이다.

한국에서 취업과 빈곤 관계를 연구한 논문들을 보면 취업자인데 빈곤가구인 경우는 8% 내외에 불과하다. 즉 저임금 근로자만 돼도 빈곤가구에서 벗어날 확률이 그만큼 높다는 얘기다. 그런데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올리면 일자리를 잃고 빈곤가구로 전락하는 저임금 근로자들이 많이 늘어날 것이다. 이는 양극화와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2017년 내내 매월 약 30만 명 전후 수준이던 신규 취업자 숫자가 2018년이 되자 갑자기 10만 명 수준으로 급감했다. 한두 달 이례적으로 그런 것이 아니라 6개월 연속 ‘고용 쇼크’가 발생했다. 이렇게 고용 쇼크가 발생한 것은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고 본다.

노동계는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올려서 일자리를 잃은 저임금 근로자들이 아예 생계유지가 불가능한 처지로 내몰리는 사태를 원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단기간에 촉급하게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올리라는 요구를 거둬들여야 한다.

우리 소상공인들은 최저임금이 인상돼 그들이 인간답게 생활할 수 있기를 바란다. 더 많은 근로자가 최저임금의 혜택을 받으려면 반드시 영세 자영업자들의 지급능력이 향상돼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와는 정반대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올해 1분기 자영업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2.3% 급감했으며, 2018년 자영업 폐업자 수는 100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지난해 경제성장률이 3.1%이고, 물가인상률이 1.9%인데 올해 최저임금은 16.4% 올랐다. 11.4%의 비용이 추가로 발생한 것이다. 그 비용부담이 고스란히 자영업자들, 즉 소상공인들에게 전가된 것이다. 게다가 2019년 최저임금 인상률을 또다시 두 자릿수(10.9%)로 책정해 2017년 기준 최저임금( 6470원)에 비하면 문재인 정부 들어 2년간 29%를 인상한 셈이다. 탈이 날 수밖에 없다.

영세 자영업자들은 근로자들에게 최저임금을 주고 싶어도 도저히 지급할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소상공인들은 매출 규모가 작은 5인 미만 사업장에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하는 방안을 요구하는 것이다.

노동계가 영세 사업장에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해 최저생계비도 벌지 못하는 근로자들이 더욱 많아지는 것을 진정으로 염려한다면, 기금을 모아 저임금 근로자들을 지원하는 등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저임금 근로자들과 영세 자영업자들, 노동계와 소상공인업계가 상생하는 길이다. 아울러 정부는 조속히 최저임금 1만원을 실현하려는 최저임금 정책의 기조를 바꾸길 바란다.

최승재 소상공인연합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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