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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집사] #21. 네 바로 접니다, 이 구역의 소문난 냥덕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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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는 잘 크고 있어?”

요즘 회사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선배들로부터 가장 많이 듣는 인사다. 고양이 키우는 이야기를 직접 나눠본 적 없는 선배들도 나무의 존재를 알고 있다. 보통 오랜만에 만나면 ‘네가 몇 기였지?’ ‘지금 어디(부서)에 있지?’ 등을 질문하던 선배들이 이젠 너무도 자연스럽게 내 고양이의 안부를 묻는다. 나의 육묘가 이토록 소문난 게 민망하면서도 약간 신나서 대답하곤 한다. “이미 너무 잘 커서 더 크면 곤란해요….”

[백수진의 어쩌다 집사] #(21) 소문난 마음

주변의 많은 사람이 나를 보면 고양이를 떠올린다. 다른 주제로 이야기하다가도 어느새 고양이 얘기로 옮겨 간다. 무더위에 관해 이야기하다가 고양이를 두고 나올 때 에어컨을 어떻게 하는지 묻는다거나. 여름 휴가 계획을 이야기하다가 여행 갈 때 고양이는 누가 봐주는지 묻는다거나. 산책하는 강아지를 보며 함께 귀여워하다가도 대뜸 “나무는 산책 못해?”하고 묻곤 한다. 대화 흐름이 ‘기-승-전-나무’다.

재밌는 건 내가 없는 곳에서 고양이만 보고도 나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점이다. 나는 꽤 많은 친구에게 ‘고양이’하면 떠오르는 첫 번째 사람이 되었다. 고양이를 키운 지 만 2년도 안 된 시점에서 놀라운 일이다. 하긴, 나무를 데려오기 전부터 동네에 귀여운 고양이가 있다고 참 많이도 말하고 다녔다. 게다가 매주 글을 통해 절절한 사랑 고백도 하고 있으니. 이보다 더 소문을 낼 수도 없긴 하다. 좋아하는 마음을 소문내면, 주변에서 그 마음을 먼저 챙겨준다.

하루 온종일 큰 의미 없는 수다와 넋두리가 오가는 단체 카톡방들이 있다. 대부분 알림을 꺼둔다. 이름을 알림 키워드로 설정하면 나를 찾는 메시지는 놓치지 않을 수 있다. 그런 카톡방에서 ‘수진아’ 부르는 알림이 와서 무슨 일인가 들어가 보면 고양이 사진이 몇장 올라와 있다. 지나가다 길냥이를 만나서 찍었단다. 그 길냥이가 나무를 닮았다거나, 어디가 아파 보인다거나 하는 의미 있는 부름이 아니다. ‘내가 귀여운 고양이를 봤어. 자랑하고 싶은데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확실하게 반응할 사람이 바로 너야’하고 그냥 부르는 거다.

그 외에도 이런저런 고양이 관련 콘텐츠가 구독 신청이라도 한 것처럼 내게 몰려든다. 간혹 인터넷에서 주운 귀여운 고양이 사진일 때도 있고, 유튜브 영상일 때도 있고, 고양이가 인덕션을 켜서 불이 났다는 등의 기사일 때도 있다. 지인이 키우는 고양이, 요가 학원에 사는 고양이, 자주 가는 카페에서 돌봐주는 길냥이 등 각자의 일상 속 고양이를 나에게 보여준다. 누구에게나 고양이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은 사람이 되었다는 건 즐거운 일이다.

진짜 고양이가 아니라 그림이나 모형일 때도 마찬가지다. 주말마다 집에 오는 중국어 선생님이 어느 날 선물이라며 고양이 모형이 달린 민트색 샤프를 가방에서 꺼냈다. “사내 퀴즈 대회 상품인데, 수진씨가 좋아할 것 같아서 제가 받아왔어요.” 집에 올 때마다 나무와 마주치고 수업 중에 고양이 이야기도 많이 나누다 보니, 그 샤프를 보자마자 고양이 키우는 제자가 떠올라 열심히 퀴즈를 맞혀 받아왔다고 했다. 선생님의 예상대로 선물은 냥덕후 맘에 쏙 들게 예뻤다.

옆 부서 선배는 고양이 관련 책을 발견하면 툭툭 선물로 던져 준다. 머리끈·트레이·컵뚜껑 등 고양이 모양의 소품, 고양이 그림엽서, 고양이 캐릭터의 카톡 이모티콘 등 주변 사람들이 오다가다 발견한 고양이들이 내게 쌓여 간다.

‘당신이 먹은 음식이 곧 당신이다(You are what you eat)’라는 말이 있다. ‘사람은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뜻이다. 사람은 무엇을 좋아하느냐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좋아하는 것들이 곧 그 사람의 캐릭터가 되고 주변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는 계기가 된다. 고양이를, 나무를 사랑하는 마음이 이제까지 없던 나의 새로운 캐릭터로 자리 잡았다. 나무가 나에게 준 선물이다.

나무야 누나가 사진만큼 예쁘게 못 그려줘서 미안.......

나무야 누나가 사진만큼 예쁘게 못 그려줘서 미안.......

글·그림=백수진 기자 peck.soo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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