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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는 배를 침몰"…박원순 옥탑방 책에 담긴 세월호·여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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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양동 옥탑방 집무실에서 본인이 읽을 책을 소개하는 박원순 서울시장(왼쪽). 오른쪽은 옥탑방 내부 [사진공동취재단]

삼양동 옥탑방 집무실에서 본인이 읽을 책을 소개하는 박원순 서울시장(왼쪽). 오른쪽은 옥탑방 내부 [사진공동취재단]

박원순 서울시장은 22일 삼양동 옥탑방에 마련한 1개월짜리 임시 관저에 입주하면서 책 3권을 들고 갔다. 박 시장은 이날 ‘한달 동안 하게될 구체적인 일이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강남북 격차 해소를 위해 고민할 시간이 없었는데, 그것을 고민하며 책도 읽어보겠다”고 답했다.

박 시장이 들고 간 책 중 두 권은 『도시는 왜 불평등한가』(리처드 플로리다) 와『어디서 살 것인가』(유현준)다. 도시 빈곤의 원인과 사고파는 수단으로 평가받는 주택에 대한 반성이 담긴 책이다.

박 시장이 마지막에 소개한 다른 한 권은 도시 정책과는 직접 관련이 없는 책이다. 황현산 고려대 명예교수가 6월 발간한 『사소한 부탁』이다. 박 시장은 이 책에 대해 “세월호 참사와 (최순실) 국정농단, 여성혐오까지 작가의 생각을 담은 수필 같은 책”이라고 소개했다.

첫날밤을 폭염 속에서 보낸 박 시장은 『사소한 부탁』에서 어떤 내용을 읽게 될까. 작가는 세월호 참사를 언급하는 대목에서 ‘악마’라는 말을 꺼냈다. 여기서 악마는 ‘늘 평범한 얼굴을 지니고 있고, 제도와 관습 속에 교묘하게 숨어들어 있는 존재’다.

삼양동 지역 주민들과 인사하는 박원순 서울시장 [사진공동취재단]

삼양동 지역 주민들과 인사하는 박원순 서울시장 [사진공동취재단]

작가는 “그 위급한 시간에 크게 활약해야 할 사람들이 딴짓을 하게 만든 것도 악마의 셈에 들어 있다”며 “악마는 눈뜨고 그 생때같은 아이들을 잃는 순간에도 우왕좌왕할 정부를 기다려 배를 침몰시켰다”고 적었다. 2014년 4월 참사 당시 제 역할을 못 한 박근혜 정부를 은유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박 시장은 지난 선거 당시 “꽃처럼 스러진 우리 아이들 영령 앞에 왜 나는 다시 서울시장이 되려 하는지 스스로 확인해 보고, 무엇을 앞으로 해야 할지 다짐해본다”고 밝혔었다.

박 시장이 이 책을 통해 확인하고자 하는 또 다른 작가의 의견은 여성혐오 문제다. 박 시장은 여성혐오에 대해 “일상의 폭력에 대해 침묵하고 관용하며 동조하는 태도, 사소하다는 이유로 폭력으로 인정하지 않고 불평등을 고착시키는 관행은 바뀌어야 한다”(2016년 11월)는 생각을 밝힌 적이 있다.

황현산 고려대 명예교수의 에세이 『사소한 부탁』 [사진 난다]

황현산 고려대 명예교수의 에세이 『사소한 부탁』 [사진 난다]

이 책에서 작가는 “불행한 일을 당하면 누구나 그 불행을 책임져야 할 사람을 찾아내고 싶어한다”며 “비슷한 처지에 있는 한국의 젊은 남자들은 잘나가는 여자들과 페미니스트들에게 그 책임을 돌리려 한다”고 언급했다. “그러고는 왜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은 여성혐오의 혐의를 둘러써야 하느냐고 묻는다”고 덧붙였다. 작가는 또 “여전히 바뀌지 않은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자들에게 특별히 기대하는 ‘여자다움’이 사실상 모두 ‘여성혐오’에 해당한다”며 “고통을 받는 사람들의 불행을 묻어버리려는 태도가 비겁하다”고 지적했다.

박 시장은 "삼양동에 머무는 기간이 끝날 무렵엔 지역주민과 시민들에게 제가 연구하고 고민한 것을 발표하는 시간을 갖겠다"고 말했다.

최선욱 기자 isotop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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