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두드리는 소리 들리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동북아 국제정치에서 이 지역 국가들은 하나의 기본원칙에 합의돼있다. 그것은 이념과 체제를 넘어 국가간의 개방과 협력을 추구한다는 정책방향이다. 이것은 단기적으로는 남북한에 대한 4강의 교차교류, 장기적으로는 교차승인을 포함한다.
우리는 일찍부터 이런 원칙에 따라 중국·소련과의 관계개선과 상호교류를 모색해 왔다. 중소도 정경분리의 원칙 위에서 교차교류를 목표로 우리에게 접근해 오고 있다.
그러나 이 지역 6개국 가운데 유독 북한만은 이 기본방향을 거부, 아직도 문을 굳게 닫은 채 혁명과 해방을 외치며 고립주의의 길을 걷고 있다.
그 때문에 나머지 5개국은 북한을 개방된 국제무대로 끌어내는 것을 이 지역에서의 정책과제로 삼고있다. 중국은 오래 전부터 평양에 대해 중국식 개방과 남북대화 재개를 권고해 왔다. 그라스노스트(개혁)와 페레스트로이카(개방)를 내건 소련의 「고르바초프」도 내년에 평양을 방문, 김일성을 설득할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도 지금 북한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미국무성은 북한에 대한 무역통제를 완화하고 북한여권 소지자에게 비자를 발급하며 미국 외교관의 북한 외교관접촉을 허용할 방침이다.
이런 전환은 미국이 테러 국가로 지정했던 북한에 대한 응징조치의 해제를 의미한다. 미국은 83년의 아웅산 사건과 지난 1월의 KAL기 폭파사건 이후 북한을 테러국가로 지정하여 그 같은 응징조치를 취해 왔다.
일본은 아직 북한정책을 분명히 밝히지 않고 있으나 미국의 뒤를 따를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북한은 이 같은 주변의 움직임을 외면한 채 폐쇄와 고립을 고집하고 있다. 그것은 우리 정부가 취한 북한과의 간접무역 허용조치를 거부함으로써 더욱 극명하게 나타났다. 북한은 지난 7일 정부가 발표한 6개항의 대북 경제개방조치를 『내외의 여론을 기만하고 시간을 끌어 통일을 방해하려는 분열주의적 책동』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통일의 근본문제를 마련키 위한 정치·군사 문제부터 풀어나가자』고 주장했다.
우리 정부는 정상회담을 열어 정치·군사 등 통일의 근본문제를 협의하자고 제의해 놓고 있다. 정치·군사 문제가 해결되기 전이라도 가능한 분야의 협력과 교류를 위해 내놓을 것이 바로 간접무역 형식의 경제개방 조치다. 그것이 왜 분단을 영구화하고 분열을 가중시킨다는 것인지 우리로서는 이해할 수 없다.
북한의 탈고립 개방화는 한반도에 대한 주변 4강의 교차교류를 성립시켜 이 지역의 안전과 발전을 가져올 수 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교차승인이 될 것이다. 북한을 제외한 이 지역의 모든 나라가 생각하는 금후의 동북아 질서도 바로 이런 관계다.
지금이야말로 북한이 폐쇄와 고립으로 인한 경제적 후진과 사회적 낙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미국이 고려하고 있는 대북 개방조치가 북한이 동북아 국제협력무대에 참여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