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 해병대 전역하기(사고 없이)'
22일 경북 포항 해병 1사단 김대식관에 마련된 마리온 헬기 사고 순직 장병 합동분향소에서 아들 고 박재우 병장(20)의 유품 수첩을 받아든 아버지 영진 씨(50)의 눈물은 그칠 줄 몰랐다. 아들이 하고 싶은 소망을 적어놓은 목록을 읽어내려가는 손은 떨리고 있었다.
고 박 병장의 수첩엔 스무살 청년의 작은 소망 82가지가 적혀져 있었다.
‘장학금 받기, 수영·사진 배우기, 마사지 자격증 따기, 회계 공부하기, 글씨 멋있게 쓰기’ 등이다.
하지만 이 스무살 청년의 꿈은 이제 이루어질 수 없게 되었다. ‘사고 없이 해병대 전역하기’ 바로 위 71번은 ‘헬기 타보기’ 였다. 헬기 사고로 순직한 그가 마지막으로 이룬 소망이 된 셈이다.
운동을 좋아해 스포츠 학과에 다니던 박 병장은 지난해 4월 해병대에 자원입대했다. 평소 해병대원이라는 자부심이 컸던 그는 전역을 9개월 남겨둔 지난 17일 포항공항에서 탑승했던 해병대 상륙기동헬기 ‘마린온’이 이륙 직후 주회전날개가 항공기에서 분리된 뒤 동체가 지상에 충돌하면서 순직했다. 박 병장을 포함한 5명은 지난 18일 1계급 특진됐다.
박 병장의 수첩은 의류 등이 담긴 가방 등과 함께 이날 해병대로부터 유가족에게 전달됐다.
아버지 박 씨는 "재우가 제대한 후 하고 싶었던 일 82가지 중 71번이 헬기를 타보는 것이었는데 이렇게 주검으로 돌아올 줄 몰랐다"고 말했다.
사고 5일째이자 조문 이틀째인 이날 정경두 합참의장을 비롯한 조문객 1000여 명의 발길이 이어졌다.
박 병장의 할아버지는 이날 조문 온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 앞에서 “우리 애를 살려내라... 나를 죽여라”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울부짖기도 했다.
송영무 국방부 장관은 지난 21일 경북 포항의 마린온 헬기 추락사고 합동분향소를 방문, 조문했다. 국방부는 이날 송 장관의 조문 사실을 전하면서 "송 장관은 지난 20일 국회 법사위원회 답변과 관련한 일부 오해에 대해 '진의가 잘못 전달되어 송구스럽다'는 취지의 말을 전하고 유가족분들께 이에 대한 이해를 구했다"고 밝혔다.
송 장관은 지난 20일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유족들께서 의전 문제에 있어 흡족하지 못해 짜증이 나신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해 부적절한 발언이었다는 지적을 받았다. 조문 온 송 장관에게 일부 유족은 "우리가 의전 때문에 짜증을 낸 줄 아느냐. 그렇게 몰상식한 사람인 줄 아느냐"고 소리치기도 했다.
박 병장을 비롯한 이들 헬기 사고 순직 장병들의 영결식은 오늘(23일) 오전 9시 30분 경북 포항 해병대 1사단 도솔관에서 해병대장으로 치러진다.
한편 유가족과 해병대사령부는 지난 21일 공동 보도문을 통해 사고 조사위원회를 동수로 구성하고 유족이 추천하는 민간 위원장을 선임하기로 했다. 또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한 치 의혹 없이 중립적이고 객관적으로 사고 원인을 규명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순직한 해병대 장병을 영원히 기억하고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위령탑 건립을 추진한다.
김경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