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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핵화 안 급하다는 트럼프, 뒤에선 "왜 더딘가" 분통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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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각료회의에 참석해 발언 중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UPI=연합뉴스]

18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각료회의에 참석해 발언 중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UPI=연합뉴스]

“비핵화에 시간이 얼마나 걸리던 정말 급할 게 없다.”(16일 CBS 방송과 인터뷰)

“미사일 엔진사이트는 어떻게 됐나. 왜 협상 진전이 없나.”(21일 워싱턴포스트 보도)

북한과 비핵화 협상 교착 상태에 대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두 얼굴 중 어느 쪽이 진짜일까. 워싱턴포스트는 21일 “트럼프 대통령은 북핵 협상에 정신이 사로잡혀 있고 매일 보좌진들에게 진행 상황을 확인한다”며 “언론의 비판적 보도와 함께 협상에 진척이 없다는 데 좌절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특히 “지난 주말 보좌관 회의에선 협상에 새로운 긍정적인 진전 사항이 전혀 없다는 점에 대해 분통을 터뜨렸다”고 신문은 전했다.

WP, 유해송환ㆍ동창리폐쇄 안 되는데 좌절 #북 협상대표 김영철 "권한없다" 지연전술에 #'스파이 대신 협상가' 이용호 외무상 교체론

워싱턴포스트는 백악관 보좌진 6명, 국무부 관리들과 외교관들이 익명으로 이 같은 트럼프 행정부 내부의 대북 협상의 속내를 전달했다고 전했다. 신문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북ㆍ미간 회담이 매우 잘 지내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홍보에 열중하지만 사석에선 즉각적인 진전이 없는 데 화를 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분노한 건 6ㆍ12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즉각 이뤄질 것이라고 했던 한국전 실종 미군 유해 200여구 송환과 동창리 미사일 엔진시험장 파괴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동시에 미국 언론들이 싱가포르 공동성명을 통해 양국 긴장을 축소한 것보다는 비핵화 시간표를 포함한 구체적 합의를 하지 못했다고 부정적 보도에 집중하는데도 격앙돼 있다고 한다.

미 정보기관 관리들은 ‘강선’ 비밀 우라늄 농축시설을 포함해 북한이 핵 프로그램의 핵심 시설들을 숨기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지적했다. 외교관들은 북한이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3차 방북 이후 후속 회담은 취소한 채 더 많은 돈을 요구하며 기본적인 통신망조차 유지하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미국의 협상가들은 북한 협상팀의 지연 및 혼란전술이라는 완강한 저항에 직면한 상태라고 한다.

분노한 트럼프의 모습은 직전 CBS 방송과 인터뷰와는 정반대다. 그는 인터뷰에서 “정상회담 이후 김정은 위원장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고 평가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심지어 우리가 만나기도 전에 미국인 인질 석방을 매우 빠르게 조치했다. 나는 대가를 지불하지 않았다”며 “나는 김 위원장 본인을 위해 굉장히 똑똑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북핵 문제는 수십 년 동안 계속돼 왔기 때문에 나는 시간이 얼마가 걸리더라도 진짜 서두르지 않을 것이다. 그사이 보이지 않는 막후에선 매우 긍정적인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실제 상황은 정반대로 움직였다. 폼페이오 장관의 지난 6~7일 3차 방북은 최악의 상황이었다.
폼페이오 장관은 상대인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에게 비핵화의 리스트ㆍ시간표와 유해송환 등의 구체적인 이행 약속을 받으려고 했지만 김 부위원장은 “아직은 구체적인 이행 계획을 약속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나왔기 때문이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지난 3일 3차 방북때 평양 순안공항에 마중나온 이용호 북한 외무상(오른쪽). 실제 회담은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가운데)이 협상 대표로서 최선희 외무성 부상과 함께 참석했다.[AP=연합뉴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지난 3일 3차 방북때 평양 순안공항에 마중나온 이용호 북한 외무상(오른쪽). 실제 회담은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가운데)이 협상 대표로서 최선희 외무성 부상과 함께 참석했다.[AP=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이 거세지면서 미 관리들 사이에선 북측 협상대표인 김영철 부위원장 교체론도 나오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보기엔 김 부위원장은 비타협적이며 김정은 위원장의 매우 분명한 지시 없이는 협상을 할 수 없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김 부위원장은 자신이 협상 대표면서도 구체적 사안을 제기할 때마다 “관련 문제에 대해 논의할 아무 권한이 없다”는 식으로 협상을 방해하고 있다는게 트럼프 행정부 인사들의 인식이다. 이 때문에 좌절한 미국 관리들은 북한이 협상 대표를 이용호 외무상으로 교체하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이다.

빅터 차 조지타운대 교수는 신문에 “북한에서도 김영철 부위원장에서 이용호 외상으로 협상 대표 교체 논의가 있는 것 같다”며 “이용호 외무상은 비핵화 협상에 밝을 뿐만 아니라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는 반면 김영철은 협상가가 아닌 스파이일 뿐”이라고 말했다.

워싱턴=정효식 특파원 jjp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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