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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직업은 구직자"....직장인 평균 퇴직연령 49세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박영재의 은퇴와 Jobs(24)

김은호(50) 씨는 지난 3월 대기업 생활용품팀에서 부장으로 있다가 옷을 벗었다. 부산에 있는 국립대학을 졸업하고 후배들로부터 ‘아니 그 회사면 앞길은 탄탄대로네!’라는 찬사를 들으면서 첫 출근을 했다.

처음 주어진 업무는 일선 매장을 관리하는 일이었다. 새로 개점하는 매장을 지원하기 위해 새벽 5시에 출근하는 것은 다반사였으며, 밤샘 작업은 기본이었다. 경력이 쌓이면서 업무 영역이 넓어지더니 브랜드 매니저로 활동했고, 신규 브랜드를 론칭하는 업무까지 맡았다. 회사로부터 인정을 받았고, 해당 부문을 책임지는 본부장까지 승진했다. 하지만 자신이 아무리 뛰어나도 직장인의 범주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하루 6만원씩 실업급여 받으며 눈물겨운 구직활동

서울 강남구 코엑스 '중장년 전문인력 채용박람회'를 찾은 중장년들이 취업 상담과 면접을 보기 위해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본문 내용과 연관없는 사진). 김동호 기자

서울 강남구 코엑스 '중장년 전문인력 채용박람회'를 찾은 중장년들이 취업 상담과 면접을 보기 위해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본문 내용과 연관없는 사진). 김동호 기자

결국 50세 나이에 퇴직했다. 처음에는 젊은 나이에 퇴직했다는 자괴감과 창피함도 있었지만, 이제 고등학생인 아이를 생각하니 맥없이 있을 때는 아니었다. 먼저 아내와 현재 상황에 대해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고, 본인이 생각하고 있는 향후 방향과 계획을 설명했다. 앞으로 예상되는 수입은 하루 6만원씩 240일간 지급이 예정된 실업급여가 전부고, 줄여야 할 불요불급한 지출 항목에 대해서도 말해줬다.

김 씨는 본인의 승용차를 처분하기로 했다. 아내가 아이들을 학원에 태우고 다니는 승용차 보다 본인 승용차가 크고, 유지비용도 많이 들기 때문이었다. 가능하면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했다. 무한요금제였던 휴대폰도 알뜰폰으로 바꿨다. 이 두 가지 항목만으로도 지출비용이 많이 절약할 수 있었다. 부인은 남편의 결단에 놀라는 눈치였다.

고용센터에서 실업급여 신청을 하면서 구직등록을 하고 적극적인 구직활동을 시작했다. 중장년 일자리희망센터를 방문해 전문적인 교육과 상담을 받으며 본인의 경력을 점검했다. 체계적인 구직전략을 수립하고,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정교하게 다듬기 시작했다. 더불어 주변 지인들에게 본인이 퇴직했고, 구직 중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지인들은 그의 인간됨과 실력을 알고 있었기에 주변에 적극적으로 알리기 시작했다.

또한 인터넷 채용사이트를 꾸준히 방문하면서 새로운 정보 획득에 소홀하지 않으면서 자신에게 맞을만한 기업에 공격적으로 구직서류를 제출했다. 물론 처음 몇 개월 동안은 좌절의 연속이었다. 과거 근무했던 회사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작은 곳에 서류를 제출하면서 ‘나 정도 스펙이면 문제없겠지!’ 했는데, 무려 40대1의 경쟁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부산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서 열린 '경력직·중장년 및 청년 미니 일자리박람회'를 찾은 구직자들이 채용정보 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 송봉근 기자

부산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서 열린 '경력직·중장년 및 청년 미니 일자리박람회'를 찾은 구직자들이 채용정보 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 송봉근 기자

우연히 채용정보를 입수해 지원한 기업에서 면접을 본 후 연락을 주겠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다리다 소식이 없어 포기했는데, 나중에 지인을 통해 알아보니 그 회사 사장은 김 씨의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는 것이다. 중간에 면접을 본 영업부장이 자신보다 김 씨의 능력이 훨씬 뛰어나 위기감은 느껴 위로 보고하지 않았던 것.

그 후로는 이력서를 두 가지 버전, 본인의 경력을 제대로 기술한 이력서와 경력을 낮게 세탁한 이력서를 준비해 회사 규모에 따라 맞는 것을 제출한 후 최종 결정권자 면접에서 실력을 선보이는 전략도 세웠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8개월 후 서울 근교에 위치한 생활용품 제조 회사의 영업책임자로 취업하게 됐다. 이곳에서 능력을 발휘해 유통망 다변화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회사는 1년 만에 매출이 전년 대비 200%까지 성장했고, 김 씨는 영업은 물론 전체 상품을 책임지는 본부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우리나라 직장인의 퇴직 나이 49세

우리나라 직장인들은 49.1세에 주 된 직장에서 퇴직한다는 충격적인 통계가 나왔다. 가장이 49세이면 이 가정은 아마도 첫 아이는 대학 진학을 앞두고 있거나 재학 중이고, 사는 아파트 융자금도 많이 남아있을 뿐 아니라 또 몇 년 후면 자녀들이 결혼도 해야 할 나이일 것이다. 정말 많은 자금이 필요한 시기이다.

아마도 ‘몇 년만 더 버텨 아이들이 대학을 졸업한 후에 퇴직했으면’하는 아쉬움도 남을 것이고 또는 ‘차라리 좀 더 젊었을 때 퇴직하고 다른 일을 시작할 것을’하는 미련도 남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 나왔든 간에 차이는 없다. 현실을 받아들이고 지혜롭게 대처하는 것이 중요하다. 먼저 가족들에게 현재 상황을 정확하게 이해시키고, 특히 경제적인 부분은 공유할 필요가 있다. 구직활동은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리고, 비용도 든다.

2015년 전경련과 파인드잡에서 조사한 ‘중장년 재취업 인식’에 따르면 중장년 구직자의 35%가 1년 이상 구직활동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재무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가계 지출에서 줄일 부분은 과감하게 줄여야 한다. 향후 6개월에서 길게는 2년 동안 소득이 끊길 기간에 대해 대비도 해야 한다. 또 새로운 경력을 개발하기 위한 교육, 훈련비도 필요하다.

한 고용복지센터에서 구직자들이 취업상담을 위해 대기하고 있다. 새로운 일을 찾을 때 막연하게 혼자 생각하지 말고 정부 지원기관을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중앙포토]

한 고용복지센터에서 구직자들이 취업상담을 위해 대기하고 있다. 새로운 일을 찾을 때 막연하게 혼자 생각하지 말고 정부 지원기관을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중앙포토]

새로운 일을 찾을 때 막연하게 혼자 생각하지 말고 정부 지원기관을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먼저 가까운 고용센터를 방문해 구체적인 상담을 받은 뒤 중장년 일자리희망센터, 노사발전재단 등 민간위탁기관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자신의 경력을 정확하게 분석하고, 이들 바탕으로 구직 방향을 정하고 체계적인 구직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가장 기본이 되는 이력서, 경력기술서, 자기소개서의 완성도도 높여야 한다. 기업의 인사담당자들이 이력서를 볼 때 가장 먼저 눈이 가는 곳이 사진이라고 한다. 급하게 지하철에 있는 즉석사진관을 이용할 것이 아니고 전문 스튜디오를 방문해 아주 멋진 이력서용 사진을 준비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루 16시간 이상 구직활동에 몰두해야

지금부터 나의 메인 잡은 구직이다. 누가 직업이 뭐냐고 물어보면 ‘구직자’라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내 일상은 구직활동에 초점을 둬야 한다. 아침 일찍 일어나 운동하고, 씻고 구직센터로 출근해야 한다. 오전에는 관련된 정보를 확인하고, 내 이력서를 업데이트한다. 오후에는 구직활동에 도움이 될만한 사람들을 만나고, 저녁에는 구직과 관련된 정보를 얻기 위한 활동을 해야 한다. 이렇게 하루 16시간 이상을 구직과 관련된 일에 몰두해야 한다.

요즘 젊은이는 취업을 위해 토익점수를 900점 이상 얻고, 한국사 능력 시험·컴퓨터 관련 자격증 취득·해외어학연수·봉사활동 점수 취득 등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다. 반면 중장년 구직자는 청년 구직자보다 구직활동의 적극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 중장년 구직자 역시 구직에 성공할 때까지 적극적으로 도전해야 한다. 명심하자. 지금 내 직업은 ‘구직자’임을.

박영재 한국은퇴생활연구소 대표 tzang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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