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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동본 금혼·호주제는 오랜 전통 아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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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3호 30면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조선시대

법과 풍속으로 본 조선 여성의 삶

법과 풍속으로 본 조선 여성의 삶

법과 풍속으로 본
조선 여성의 삶
장병인 지음, 휴머니스트

유럽보다 더 강한 국가의 힘 #후기에 갈수록 ‘여성 정절’에 집착 #혼인·간통·성폭행 등 일일이 간섭 #개인 욕망 좇았던 사대부들 #말·집·붓·벼루 등 명품 수집 나서 #요즘 못지않는 ‘과시적 소비’ 유행 #서구중심·식민사관의 잔재 #서양도 신분 중심의 불평등 사회 #유교보다 계급 갈등에 눈 돌려야

조선의 잡지
진경환 지음, 소소의책

우리 조상은 어떻게 살았을까. 사람은 ‘역사적 인간(homo historicus)’이기 때문에 이런 질문을 한다. 역사 중에서도 무엇을 볼 것인가. 관심에 따라 다른 ‘사학적 렌즈’가 필요할 것이다.

광각렌즈건, 망원렌즈건, 매크로렌즈건… 어떤 렌즈를 쓰건 핵심적인 역사학적 촬영 대상은 전통에서 근대로 가는 대전환이다. 전통적 조선은 근대적 대한민국으로 나아가는데 어떤 한계를 안고 있었을까. 또 근대로 나아가는 데 유리한 점은 어떤 게 있었을까.

조선의 잡지

조선의 잡지

최근 출간된 『법과 풍속으로 본 조선 여성의 삶』(이하 『여성』)과 『조선의 잡지』(이하 『잡지』)는 이 문제를 살펴볼 수 있는 재료를 풍성하게 제공한다. 『여성』이 들여다본 것은 부제가 알려주듯 ‘혼인·이혼·간통·성폭행으로 읽는 조선 시대 여성사’다. 『잡지』는 ‘18~19세기 서울 양반의 취향’에 포커스를 맞췄다. 두 책을 함께 보면 신분제 속에서 억압받는 여성과 기득권자인 남성이 대비된다.

『여성』의 저자인 장병인 충남대 명예교수는 국사학자다. 『잡지』의 저자인 한국전통문화대학 교양기초학부 진경환 교수는 국어국문학자다. 두 저자 모두 조선 시대에 대한 오류나 편견을 수정하고 우리가 새로운 역사의 지평을 열기 위해 꼭 알아야 할 사항을 제시한다. 두 저자 모두 실록·문집·일기·고문서 등 사료를 꼼꼼히 점검했다.

어떤 오류·편견이 있을까. 『잡지』에 나오는 흥미로운 사례는 1000원권 지폐에 나오는 이황 선생이 쓰고 있는 복건(幅巾)을 둘러싼 논란이다. 이황은 복건을 ‘중들이 쓰는 두건’이라고 이해했다. 선비가 쓰기에 적절치 않다고 본 것이다. 남인들은 이황의 선례에 따라 200년 가까이 복건을 착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여성』에 따르면 ‘유교 망국론’은 비판적 검토가 필요하다. 어쩌면 가장 심각한 본질적인 오류다. 서구중심주의와 식민사관이 조선 시대의 사회상을 짙게 채색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저자가 역설한다.

서구중심주의는 흔히 근대화 이전의 조선과 근대화 이후의 서구를 비교한다. ‘기울어진 운동장’ 같은 비교사학적 방법론이다. 그런 식의 비교에 따르면 조선은 ‘열등한’ 국가일 수밖에 없다. 근대화 이전의 조선은 근대화 이전의 서구와 비교하는 게 맞다. 조선이나 서구나 전통 사회는 가부장제·신분제가 지배하는 불평등한, 특히 여성을 차별하는 사회였다. 『여성』의 저자 장병인 교수는 유교나 성리학의 본질이 아니라 ‘지배층의 계급적 이해관계’에서 조선 시대 여성 차별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고 분석한다.

사극에 나오는 조선 시대는 20, 21세기의 프리즘이 굴절시켜 보는 조선 시대다. 장병인 교수에 따르면, 조선 시대 혼인절차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 이혼·간통·성폭력에 대해서도 실상 파악이 초기 단계다. 『여성』은 30여년간 조선 시대 여성사를 연구한 장병인 교수의 중간 보고서다.

풍속화가 신윤복(1758~?)이 그린 ‘연소답청(年少踏靑)’. 남녀 세 쌍이 행락 길에 나섰다. 한량이 기생에게 담뱃대를 건네준다. 그림 속 담뱃대·말·의복 하나하나에 역사성이 담겼다. 양천(良賤)의 차이도 남녀 간 애정 앞에서는 사라진 듯 보인다. 하지만 조선사회는 국가가 개인의 사생활을 통제하는 사회이기도 했다. [중앙포토]

풍속화가 신윤복(1758~?)이 그린 ‘연소답청(年少踏靑)’. 남녀 세 쌍이 행락 길에 나섰다. 한량이 기생에게 담뱃대를 건네준다. 그림 속 담뱃대·말·의복 하나하나에 역사성이 담겼다. 양천(良賤)의 차이도 남녀 간 애정 앞에서는 사라진 듯 보인다. 하지만 조선사회는 국가가 개인의 사생활을 통제하는 사회이기도 했다. [중앙포토]

조선을 지배한 국제정치 전략이자 이념은 사대주의다. 조선의 지배층은 『대명률』을 수용해 조선을 제2의 중국으로 건설하려고 했다. 하지만 조선과 중국의 현실은 달랐다. 장병인 교수는 중국의 혼인 절차인 ‘6례·4례’가 이 땅에서 어떻게 ‘조선식 4례’라는 일종의 타협안을 창출했는지 논증한다.

『여성』은 우리가 알고 있는 소위 칠거지악(七去之惡, “예전에, 아내를 내쫓을 수 있는 이유가 되었던 일곱 가지 허물. 시부모에게 불손함, 자식이 없음, 행실이 음탕함, 투기함, 몹쓸 병을 지님, 말이 지나치게 많음, 도둑질을 함 따위이다”)은 조선 시대 실상과 거리가 있다고 밝힌다. 또한 장병인 교수는 ‘동성동본 금혼’이나 ‘호주제’가 결코 우리의 전통이나 미풍양속이 아니었다는 것을 문서 검증을 통해 알려준다.

『여성』에 나오는 가부장제 기득권자들은 조선 후기로 갈수록 여성의 ‘정절 이데올로기’에 병적으로 집착했다. 게다가 평민·천민들 또한 기득권자들의 논리를 수용했다. 하지만 그러한 시대 분위기 속에서도 ‘여성이 끝까지 저항하면 강간은 있을 수 없다’는 논리의 문제점을 지적한 사람들이 있었다. 장병인 교수는 성호 이익(1681~1763)의 말을 인용한다. “여자가 거절하는데 남자가 강제한 것은 이미 강간이니, 그 후의 말들은 말할 것이 못된다.”

근대화의 핵심 추진 조직은 국가다. 『여성』에 나오는 조선의 국가는 ‘전체주의’를 연상케 하는 강력한 국가였다. 유교 이념으로 무장한 국가가 개인적·사적 영역에 속하는 혼인·이혼·간통·성폭행에 일일이 간섭했다. 조선의 국가는 서구의 국가보다 오히려 더 강력한 국가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조선은 비서구 사회 중에서 헤드스타트(head start)를 누렸다.

조선 최초 세시풍속지인 실학자 유득공(1749~1807)의 『경도잡지(京都雜志)』를 재해석한 『잡지』가 그리는 18, 19세기 조선 또한 ‘근대화 친화적’인 나라였다. 『경도잡지』는 경도인 한양의 세시 풍속을 기록한 책이다. 여기서 잡지(雜志)는 ‘자질구레한’ 천문·지리·예악·정형 따위를 기술했다는 뜻이다. 『잡지』의 주인공인 서울 양반들은 소스타인 베블런(1857~1929)이 말한 ‘과시적 소비(conspicuous consumption)’를 방불케 하는 소비생활을 했다. 국가뿐만 아니라 개인이 강화되지 않는 근대화는 없다. 유득공이 그린 서울 양반들은 유교 이념에서 벗어나 실용·효용·유행을 추구했다. 그들은 ‘개인적인 욕망’에 충실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명품을 갖고 싶어했다. 아내나 첩, 기생들에게 값비싼 노리개를 사줬으며, 자신들은 말·집·담배·문방사우·꽃·나무 등 명품 유행에 뒤지지 않으려고 했다. 서울 호사가들은 여덟 칸짜리 비둘기집(용대장)을 만들어놓고 누가 더 많이 희귀하고 값비싼 비둘기를 사들이냐를 놓고 신경전을 벌였다. 그 시대에도 각종 ‘마니아’가 등장하고 화훼 재배, 정원 경영 같은 ‘웰빙 붐’이 불었다.

『여성』과 『잡지』의 공통 주제는 ‘변화’다. 조선 후기는 유교라는 국가 이념을 통한 사회·개인 통제가 강화되는 측면과 흔들리는 모습을 동시에 보여줬다. 유교의 지배에 대해 지배층은 회의를 품었다. 하지만 피지배층은 유교적 가치관을 내재화했다. 어쩌면 대한한국 사회의 유교화 또한 미묘한 형태로 진행되고 있는지 모른다.

‘역사적 인간’은 과거에 대해 판단하고 조상을 평가한다. 고려에서 조선으로 왕조와 국명이 바뀌었듯이 수백 년 후에는 대한민국도 새로운 국가로 다시 탄생할지 모른다. 우리 후손들은 대한민국에서 살다간 그들의 조상을 평가할 것이다. 역사가 두려운 이유는 평가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김환영 지식전문기자 whan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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