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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올 3% 성장 포기···대책은 또 나랏돈 풀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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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정부가 올해 3% 성장률 달성 가능성을 사실상 내려놨다. 정부의 성장률 전망 수치는 대체로 다른 기관보다 높다. 정부의 전망치는 정부의 희망 섞인 목표가 담기는 데다 민간에 주는 신호 등도 고려된다. 이런 정부의 성장률 전망치가 3%를 밑돈다는 건 그만큼 경기가 부진하다는 방증으로 풀이된다. 이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올 하반기에 4조원 규모의 재정 보강과 내년 ‘슈퍼 예산’편성이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8일 오전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관계부처와 합동으로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을 발표 후 안경을 고쳐쓰고 있다. [뉴스1]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8일 오전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관계부처와 합동으로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을 발표 후 안경을 고쳐쓰고 있다. [뉴스1]

정부는 18일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열고 하반기 경제정책방향 및 저소득층 일자리ㆍ소득지원 대책을 발표했다. 정부는 올해 성장률을 2.9%로 내다봤다. 당초 전망치(3%)보다 0.1%포인트 하향 조정했다. 민간연구기관과 한국은행에 이어 정부도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2%대로 조정했다. 배현기 하나금융경영연구소장은“대체로 낙관적 전망을 하는 정부가 3%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3%대 성장률 전망을 그대로 고수했을 것”이라며 “현실적으로 3% 성장 달성은 불가능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수치”라고 설명했다.

성장률 전망 올해 2.9%, 내년 2.8%로 낮춰 #취업자 증가 전망도 32만→18만명 대폭 하향 #대책은 내년 예산 7%이상 늘려 '나랏돈 풀기' #하반기 기금·공기업 동원해 4조원 재정 보강 #"재정확장 답 아니다…규제완화 혁신성장 힘써야"

정부는 하향 조정 이유로 “투자가 부진한 가운데 미ㆍ중 무역갈등 심화, 유가 상승 등 대내외 리스크가 확대됐다”라고 밝혔다. 설비투자 증가율은 지난해 14.6%에서 올해 1.5%로 급감할 거라고 정부는 봤다. 지난해 7.6%였던 건설투자 증가율은 올해 0.1% 뒷걸음질 치며 감소한다는 게 정부의 예상이다. 수출 증가율은 지난해 15.8%에서 올해 5.3%로 꺾이고, 민간소비(2.6→2.7%)도 제자리걸음 할 전망이다. 크게 악화한 고용 상황도 이번 정부 전망에 반영됐다. 당초 정부가 전망한 올해 취업자 증가는 32만명이었지만 이날 예상치는 18만명에 머물렀다.

한국은행에 이어 정부도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2%대로 낮췄다.그래픽=김주원 기자

한국은행에 이어 정부도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2%대로 낮췄다.그래픽=김주원 기자

이런 경제 부진이 내년에 더 심화할 거라는 게 더 큰 문제다. 정부는 내년도 성장률을 올해보다 낮은 2.8%로 예상했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국제무역ㆍ금융시장 불안이 확산하고 시장과 기업의 경제 마인드가 살아나지 않으면 경제 상황이 더 어려워질 가능성도 있다”며 “성장세가 둔화할 수 있고, 고용이나 소득분배 부진도 단기간에 나아지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경기 부진의 물길을 돌리기 위해 정부가 꺼낸 카드는 또다시 나랏돈 풀기다. 정부는 우선 기금을 변경하고 공기업의 돈을 동원해 약 4조원 규모의 재정을 보강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기금 규모의 20% 범위내에서 국회 동의를 받지 않고도 기금운용계획을 변경할 수 있다. 정부는 주택도시기금과 신보ㆍ기보 기금 등을 통해 주택구입ㆍ전세자금 대출, 구조조정 업종 보증, 공공기관 태양광 보증 등을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또 한국토지주택공사(LH), 한국도로공사 등이 노후 임대주택 정비, 도로ㆍ철도 안전설비 확충 사업 등을 벌인다. 지난 5월 통과된 추가경정예산(추경) 규모가 3조9000억원인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미니 추경’에 해당하는 셈이다. 여기에 자동차에 대한 개별소비세를 5%에서 3.5%로 깎아주기로 했다. 소비 진작을 위해 세금을 덜 걷겠다는 의미다.

정부는 또 내년에 슈퍼 예산 편성을 예고했다. 이날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에 “2019년도 재정지출을 당초 계획보다 확장적으로 운용하겠다”라고 명시했다. 이와 관련 김동연 부총리는 “내년 총지출 증가율이 7% 중반대 이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여당은 이미 내년도 예산을 올해보다 10% 이상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 김 부총리의 언급보다 지출 증가율이 더 늘어날 수 있다. 올해 예산은 428조8000억원이었는데 만약 내년 예산이 올해보다 10% 이상 지출 증가율이 늘어나면, 내년 예산 규모는 470조원을 넘게 된다

하지만 이런 나랏돈 풀기의 효과는 미지수라는 지적이 나온다. 표학길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재정확장은 답이 아니다”라며 “민간 기업 전반에서 투자와 혁신을 일으키려면 신규 투자나 혁신에 획기적인 세제 혜택을 주는 게 훨씬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표 교수는 “주요국이 법인세율을 획기적으로 내리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만 반대로 가면 안 된다”라고 덧붙였다.

재정 건전성 우려도 있다. 세금이 잘 걷히는 상황이지만 대체로 경기와 세수는 비례하는 만큼 경기가 나빠지는 상황에서 현재와 같은 세수 호황이 지속할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최근 보고서에서 “세수가 상대적으로 풍부한 시기에 국가부채를 상환함으로써 향후 세수 부족이 발생할 경우 국채 발행 여력을 비축할 수 있다”며 “이를 통해 국가 부채의 구조적 증가를 방지하고 재정의 경기 대응력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문재인 정부가 최근 들어 혁신성장에 공을 들이는 모양새지만 이번 대책에선 여전히 미흡하다는 지적도 있다. 정부는 다음 달 중 일자리 창출 효과가 큰 핵심규제를 선정해 발표할 계획이다. 하지만 구체적인 해법은 담기지 않고 규제 해소 대상만 정하는 수준에 그친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이 정도 재정 보강에 추경을 다시 편성해야 하지 않을까 싶을만큼 경기가 어려운 상황인 건 맞다”라면서도 “민간에서 투자가 일으킬만한 유인이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백웅기 상명대 총장은 “단기적인 경기 부양도 필요하지만, 혁신성장과  규제 완화를 병행해야 한다”라며 “혁신성장의 효과가 단기간의 나타나기는 어려운 만큼 인내심을 갖고 장기적인 시각으로 추진해야 한다”라고 제언했다.

 세종=하남현 기자 ha.nam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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