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리포트] '땜질 처방' 집값잡기 한계 부동산 로드맵 만들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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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외환위기 이후 정부는 몇 년째 아파트값과 씨름 중이다. 침체국면에 빠져 있던 주택경기를 살려내기 위해 온갖 부양책을 쏟아냈던 정부는 이제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을 잡느라 정신이 없다.

지금까지 수십차례의 집값 안정대책을 내놓았는데도 오름세가 꺾이지 않자 최근 극약처방이라 할 수 있는 9.5대책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재건축할 때 전용면적 25.7평 이하의 중소형 주택을 전체 건립 물량의 60% 이상 짓도록 의무화했다.

또 내년부터 재건축조합설립인가가 난 경우 조합원 지분을 새 아파트 입주 때까지 팔 수 없도록 하는가 하면, 1가구 1주택자라도 2년 이상 거주 및 3년 이상 보유 요건을 갖춰야 양도소득세를 면제해주도록 한 게 이번 대책의 주요 내용이다.

이렇게 되면 재건축 아파트의 채산성이 크게 떨어져 사업추진이 쉽지 않은 데다 가수요 또한 발붙이기 힘들어 아파트값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이번 대책이 나온 이후 강남권 일대 재건축 대상 아파트값이 많게는 1억원 이상 하락할 정도로 9.5 대책의 위력은 대단했다. 재건축 사업이 어렵게 된 아파트는 앞으로 더 떨어질 것이라 하니 정부 당국자의 집값 노이로제는 어느 정도 가시지 않을까 생각된다.

하지만 시장을 면밀히 들여다 보면 안심할 처지가 아닌 것 같다. 우선 9.5대책과 무관한 일반 아파트 등의 경우 희소가치로 인해 오히려 더 오를 가능성이 크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재건축 억제에 따른 공급부족 현상이 가시화될 경우 기존 집값은 또 한차례 폭등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공급이 모자라 집값이 뛰게 되면 묶었던 규제를 다시 풀어 공급을 촉진해야 하고 이것이 호재가 되어 집값이 또 요동치는 악순환이 벌어질 게 뻔하다. 그 다음 수순은 말하지 않아도 다 알 수 있는 내용이다.

정책실패로 엄청난 손실이 생겨도 책임지는 사람 하나 없다는 것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책임의식을 심어주기 위해 공무원의 정책실명제가 도입됐지만 여전히 발등에 떨어진 불 끄는 식의 단편적인 정책이 난무하는 현실이다.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정부의 땜질식 처방이 아닌 백년대계(百年大計)를 담은 '부동산 로드 맵'을 만들어야 한다. 택지개발.공급제도.건축기준.주택금융.세제 등 모든 부동산 관련 제도를 일관성 있고 예측 가능할 수 있도록 하자는 얘기다.

최영진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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