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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사 입바른 판사, 토씨 하나 틀리지 않으려 했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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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김명수는 ‘미스 함무라비’의 판사 역을 통해 배우로서 큰 성장을 보여줬다. [사진 울림엔터테인먼트]

김명수는 ‘미스 함무라비’의 판사 역을 통해 배우로서 큰 성장을 보여줬다. [사진 울림엔터테인먼트]

누구에게나 알을 깨고 나오는 순간이 있다. 이는 더이상 보호막 없이 홀로 싸워야 한다는 의미인 동시에 세차게 날아오를 수 있는 가능성을 뜻한다. 김명수(26)에게 16일 종영한 JTBC 드라마 ‘미스 함무라비’(문유석 극본, 곽정환 연출)가 그런 작품이 아니었을까. 아이돌 그룹 인피니트의 멤버 엘이 아닌 배우 김명수로서 오롯이 기억될 수 있는 전환점을 마련했으니 말이다.

드라마 ‘미스 함무라비’의 김명수 #아이돌 9년차, 배우로도 급성장 #코르크 마개 입에 물고 발음 연습

문유석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가 직접 대본을 집필한 ‘미스 함무라비’는 강한 자에게 강하고 약한 자에게 약한 법원을 꿈꾸는 판사들의 이야기다. 김명수는 이상을 좇는 젊은 판사 박차오름(고아라 분)과 세상 물정대로 흐르는 부장 판사 한세상(성동일 분) 사이에서 중심을 잡는 임바른 판사 역을 입체적으로 소화했다. 똑똑한 머리로 구구절절 맞는 말만 하는 캐릭터를 냉정하지도, 재수 없지도 않게 그려내는 것은 절대 쉽지 않은 일이다.

종영 전 만난 김명수는 “법률 용어도 많고 대사량 자체가 많아 쉽진 않았지만 너무 재미있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90% 이상 사전제작이라 여유롭게 작품을 준비할 수 있었어요. 문유석 판사님이 하는 재판도 보러 가고 얘기를 많이 나눴습니다. 한번은 자전거를 3시간 타고 수다를 3시간 떨다 헤어진 적도 있어요.”

‘미스 함무라비’의 고아라와 김명수. [사진 JTBC]

‘미스 함무라비’의 고아라와 김명수. [사진 JTBC]

가장 기억에 남는 재판으로 ‘고깃집 불판 사건’을 꼽았다. 조선족 출신 종업원이 불판을 갈다가 실수로 장애를 가진 아이 얼굴에 스치자 엄마가 트라우마를 걱정해 소송을 제기한 사건이었다. “원고나 피고 할 것 없이 다 안타까운 사람들이라 모두가 공감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어쩌다 세상이 이렇게까지 됐을까 되물어볼 수 있는 사건이기도 하고요.”

그는 ‘마음의 소리’가 담긴 내레이션까지 펼치면서 극을 끌고 간 연기가 호평받자 한껏 들뜬 듯했다. “초반엔 대사 토씨 하나 안 틀리려고 엄청 노력했는데 성동일·류덕환 선배 덕에 애드리브가 많이 늘었다”며 “나중에는 선배들이 왜 내꺼따라 하냐면서 견제할 정도였으니 제대로 배운 것 같다”고 말했다.

발음도 많이 좋아진 것 같다고 비결을 묻자 “코르크 마개 물고 연습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근성 하나로 오디션을 통과한 악바리다운 대답이다. “제가 워커홀릭이잖아요. 재능이 없으니까 더 노력하는 거죠. 댓글도 하나하나 다 보거든요. 참고해서 계속하다 보니 조금씩 늘고. 그래서 팬들은 저를 보고 키우는 맛이 있대요. ‘랜선맘’ 같은 마음으로 응원하게 되는.”

‘연기돌’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그가 더욱 마음을 다잡게 만드는 동력이 됐다. 가수 데뷔와 같은 2010년 드라마 ‘공부의 신’ 단역으로 시작해 지난해 ‘군주-가면의 주인’의 가짜 왕 이선까지 차근차근 필모그래피를 쌓아왔지만 아직도 갑자기 튀어나온 배우로 아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그는 “사실 가수 생활을 병행하지 않고 연기에만 집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2011년에 인피니트 앨범이 6장 나왔는데 그때 했던 작품들에는 아직도 미안한 마음이 있다”고 말했다.

인피니트 멤버들이 부러워하진 않을까. “처음엔 좀 신기해하더니 이젠 관심도 없는 것 같아요. 다들 솔로 앨범이나 뮤지컬 출연 때문에 바쁘거든요.” ‘마의 7년 차’ 고비를 넘긴 선배다운 대답이다. 아이돌 그룹은 공정거래위원회 표준계약서에 따라 통상 7년간 전속계약을 체결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인피니트는 지난해 호야를 제외한 6명이 재계약을 하고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그는 쉴 새 없이 다음을 이야기했다. 14~15일 데뷔 후 첫 단독 팬미팅을 연 데 이어 하반기에는 솔로 앨범을 발매하고, 새로운 작품도 들어가고 싶다고 밝혔다. “이번에 멜로가 살짝 아쉬웠잖아요. 키스신이 영상 조회 수는 가장 높던데. 그렇다고 꼭 멜로를 하고 싶다는 건 아니고, 저는 다작하고 싶어요. 뮤지컬에도 열려 있는데 제안이 없더라고요. 하하.”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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