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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찰 때 낸 아이디어 가로채기 이젠 못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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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영상처리 기술 개발업체인 A사는 2016년 증강현실 플랫폼을 개발해 대기업인 B업체에 제안하고 시연까지 했다. 기술을 사 달라는 취지였다. 하지만 B사는 A사와 협의 없이 2017년 5월 이 플랫폼과 흡사한 제품을 만들어 판매해 상당한 매출을 올렸다.

대기업이 중기 기술 뺏지 못하게 #특허청, 새 부정경쟁방지법 시행 #중국의 국내상표 침해도 적극 대응

A사 대표 임모(47)씨는 B사에 항의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B사가 플랫폼을 약간 변형한 제품을 만들어 특허침해 논란을 피한 데다 영업비밀에도 해당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임씨는 “기술을 도용해 제품을 만들어 판매한 대기업의 행태는 중소기업이 어려움을 겪는 원인”이라고 말했다.

특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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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이 같은 사례는 사라질 전망이다. 개정된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부정경쟁방지법)이 오는 18일 시행되기 때문이다. 성윤모 특허청장은 “그동안 A사처럼 개인이나 신생 기업은 아이디어나 기술이 있어도 지식재산권(특허 등)을 제대로 보호받지 못해 피해를 볼 때가 많았다”라고 말했다.

개정된 부정경쟁방지법의 핵심은 아이디어 탈취 행위에 대한 제재다. 예를 들어 A기업이 B기업의 입찰에 참가하며 사업이나 상품 아이디어를 제안했으나, B기업이 A기업과 계약은 체결하지 않고 아이디어만 이용하면 책임을 묻는다. 공모전이나 거래상담 관계 등에서 제공된 아이디어나 기술 자료를 도용하는 것도 부정경쟁 행위로 간주한다.

특허청은 이 같은 일이 발생하면 직권으로 행정조사를 하고 시정 권고를 할 수 있다. 특허청 김지수 산업재산보호과장은 “특허청이 개입해 시정 권고 등 행정지도만 해도 기업 간 아이디어 탈취 행위가 많이 감소할 것”이라고 했다. 현재는 아이디어를 도용할 경우 소송을 통해 입증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론 쉽지 않다.

이 법의 시행에 따라 영업상의 특징적 외관(트레이드 드레스)을 모방하는 행위도 금지된다. 주스 전문점(JUICY 등) 처럼 선도업체의 명성에 무임승차하는 이른바 ‘미투 브랜드’가 주요 단속 대상이다. 특허청은 프랜차이즈, 소상공인 등의 특징적 영업 외관을 모방하는 행위를 부정경쟁행위로 규정하고 행정조사와 단속에 나선다.

특허청 관계자는 “경찰은 전문성이 부족해 지적재산권 관련 사건 단속에 한계가 있다”며 “특허청 소속 특별사법경찰관이 나서면 신속하고 정확한 조치가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특허청은 다른 기업이나 개인의 특허를 침해하면 소송을 통해 손해액의 최고 10배까지 배상을 물리는 징벌배상 제도도 추진 중이다. 종전에는 실제 손해액만큼만 배상했다.

특허청은 중국 등 해외시장 진출 기업의 특허 침해에 대해서도 적극 대응한다. 이를 위해 해외지식재산센터(IP-DESK)를 현재 8개국 14곳에서 2022년까지 16개국 22곳으로 늘린다. 특허청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17년까지 3년 동안 중국 상표브로커에 의한 무단 선점은 1820건(피해기업 975개)에 달한다. 2017년 현재 글로벌 모방제품 유통업체는 전 세계 4500여개로 추산된다.

대전=김방현 기자 kim.ba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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